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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김지현
  • 13,320원 (10%740)
  • 2020-03-30
  • : 1,909

소설과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을 주의해서 볼 때가 있다. 음식이 중요한 소재가 아님에도 주인공이 먹고 있는 음식이 괜히 궁금해진다. 특히나 우리가 어릴 적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체험한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에 일조하는 역할을 음식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영미문학 번역가로 일하는 작가의 직업적 애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진저브레드’와 ‘생강빵’이 비록 같은 종류의 음식을 가리킨다 해도 두 단어의 용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월귤’과 ‘블루베리’는 같은 과일을 뜻하지만 단어의 어감은 판이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라즈베리 코디얼’을 마시는 소녀와 ‘산딸기 주스’를 마시는 소녀는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다를 것만 같다. 그러므로 진저브레드, 블루베리, 라즈베리 코디얼이 나오는 책일 읽은 독자의 경험과, 생강빵, 월귤, 산딸기 주스가 나오는 책을 읽은 독자의 경험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대목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 용어를 번역하는 일의 난감함에서 시작된 글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오히려 독자는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넘어갔을 부분이 번역가의 입장에서 여러 번 고민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V. C. 앤드루스의 《다락방의 꽃들》에 나오는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가 이 딜레마를 여실히 드러내는 음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뭔가 이상하다. ‘간장 계란밥’은 ‘간장과 계란 밥’이라고 하지 않는데, 왜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가 아니라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이지?” 소설 속 아이들이 그 많은 음식 중 굳이 (캐시의 말을 빌리자면) ‘허접쓰레기’ 같은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를 굳이 찾는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 알프 프로이센의 《호호 아줌마가 작아졌어요》에 나오는 ‘월귤'을 보면서도 작가의 고민은 계속된다. 이제는 각종 베리 종류가 한국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월귤이라는 게 무엇일까? 어렸을 때 나는 월귤이라는 이름에 ‘귤’이 들어가므로 귤과 비슷한 과일일 거라고 상상했다. (…) 하지만 사실 월귤은 링곤베리를 뜻한다. (…) 링곤베리라는 수입 단어보다 월귤이라는 국산 단어가 오히려 더 낯설게 들린다.”


목차에 나열된 음식과 그 음식이 나오는 소설의 면면은 화려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고전적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하이디》의 검은 빵에 매료되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유럽식 가난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아무리 가난이라 해도 한국의 구질구질한 가난과는 무언가 다를 것만 같았다. 김치나 소주 냄새와는 거리가 먼, 건강하고 담백한 가난, 어린이책 삽화 속 백인 여자아이들처럼 예쁘고 깨끗한 가난.”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철없다고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상상되면서 귀여운 것이다. 이 책에는 전반적으로 향수의 정서가 묻어 있다. 인생을 거쳐 간 수많은 소설들에서 각기 다른 음식을 골라낸 작가의 감식안과 상상력, 그리고 정보력이 더해진 사랑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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