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기억이 한두 가지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때로 지난날의 실수나 상처를 지우고 싶어 하곤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동화 <경성 기억 극장>은 이러한 우리의 소망, 혹은 욕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배경은 1940년대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조선입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흔하고, 조선인들은 일본식 이름을 쓰며, 경성 거리의 간판은 일본어로 가득합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시기라서 거리에는 총을 든 군인들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경성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덕구는 우연히 '경성 기억 극장'이라는 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곳은 손님들이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 주는 곳입니다. 덕구는 사장 신목운을 도와 손님들의 기억은 물론, 극장을 찾았던 사실 자체까지 지워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덕구는 자신 역시 과거에 이 극장에서 기억을 지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자신과 친구 용남이를 돌봐 주던 수현이 아저씨가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경찰에 밀고했던 기억이죠. 과연 덕구는 무슨 일을 한 걸까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까요?
<경성 기억 극장>은 내내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무거운 시대적 배경뿐 아니라, '부끄러운 기억이라면 지워도 되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극장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 일제의 만행에 협력한 사람들이나 참전 중인 군인들이라는 점에서, 책 속의 '기억'은 '역사'라는 더 큰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부끄러운 기억이라면 지워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곧 '부끄러운 역사는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지은이는 수현이 아저씨의 입을 빌려 기억에 '길잡이'라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강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면, 이후 물가에서 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처럼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에요. 길잡이가 없으면 길을 잃듯이, 나의 기억은 지금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괴롭고 부끄러운 기억도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부끄러운 역사는 잊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기억하고 경계해야 함을, 이 책은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독자에게, 그리고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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