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하자면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오래된 새 책> 이전과 이후로 나눠지는 것 같다. 정신없이 전방위적으로 장르 불문하고 좋다는 책은 다 샀고 뭐든지 구하기 힘들다는 책은 마치 나에게 주어진 과제처럼 혈안이 되어 구했더랬다.
헌책과 희귀본 수집담을 그린 것이 <오래된 새 책>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책을 누군가 귀하게 여겨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 것이 이번에 나온 <이런 고민, 이런 책>이다.
<오래된 새 책> 이후 본격적으로 책 내는 사람이 되고서부터 책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독자가 아닌 저자의 필요에 부합하는 책을 사기 시작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따라서 모든 책은 기본의 자료와 문화 그리고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책을 내기 위해서는 참고 자료가 필요하다. 이른바 사전을 비롯한 참고 자료를 사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참고할 가능성이 있는 책만을 사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집 리모델링을 하면서 버린 천 권 이상의 책은 거의 <오래된 새 책> 시절에 산 것들이다. 단순히 읽기용이거나 내 기호와 상관없이 귀하고 구하기 힘든 책들.
따라서 내 서재에는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주로 고전 소설, 인문학, 역사책이 대부분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고전을 읽을 때마다 신기하고 재미나며 인생의 귀가 막힌 통찰이 담긴 문장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언젠간 쓸 일이 있는 문장이고 집필이나 강연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들. 그 문장이 몇 쪽인지도 기록한다. 그런 문장이 담긴 책은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고전문학은 새 번역이 새로 꾸준히 나오지만, 새 판본은 그 문장이 담긴 쪽수가 달라질 테니까 말이다.
아마도 나는 1천 쪽이 넘는 나폴레옹 전기나 6권짜리 <로마제국쇠망사>를 죽을 때까지 완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언제가 책을 쓸 때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 그 책을 펼쳐볼 필요가 생길 가능성 때문에, 서재에 둔다. 나는 어쩌면 이런 책들을 읽지는 않지만, 서재에 두고 바라보는 것 자체로 든든하고 영감을 받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에는 광대한 자료는 있지만 요약되거나 일부분을 떼어온 것이 많다. 일부만 참고해서 글을 쓰면 오류가 많고 원저자의 의도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지만 이 역시 오류가 많아서 사용자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자료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서재는 나를 조련하고 나는 인공지능을 조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능력은 역시 독서와 든든한 참고용 책을 겸비한 서재에서 나온다. 읽지 않은 책으로 가득한 작가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