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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딸아이가 취직에 성공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문과 출신으로서 제 전공을 찾아서 취업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취업 시즌이니 이곳저곳에 원서를 냈고 운 좋게도 두 군데가 얻어걸린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부녀는 때아닌 다툼을 하고 있고 딸아이도 어느 회사에 출근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삼십 분 간격으로 생각이 달라진다나. 한 회사는 네임벨규가 높고 인지도가 높으며 규모가 큰 회사인데 재미가 없는(?) 직군이고 다른 회사는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니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딸아이와 다툼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에서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이 바로 진로에 관한 문제다. 주인공 필립은 조실부모하고 백부 슬하에서 자랐는데 완고한 백부는 필립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돈을 잘 버는 회계사를 하라고 강권했지만, 필립은 자기 적성을 쫓아서 파리로 미술 공부를 떠났다.

 

예술로 성공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참담한 실패를 하고 돌아온 필립을 두고 백부는 나무랐지만 필립은 백부에게 일갈을 가한다. “다른 사람이 권한 좋은 선택을 해서 얻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길로 가서 실패한 경험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 자식 문제와 부딪히니 적성보다는 보수와 인지도 높은 회사를 권하게 되더라.

 

적성에도 맞지 않는 기름집(정유회사) 면접에 가라고 닦달했고 적성에는 맞지 않는 직군이지만 좀 더 보수가 높고 규모가 큰 회사에 가라고 줄기차게 설득했다. 물론 딸아이는 부모의 조언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는 성정이 아니다. 일종의 답정녀인데 자신의 고충을 그저 공감해달라고 할 뿐 정작 결정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되돌아보니 딸아이의 결정은 언제나 옳았다. 대학 입시 때도 그랬다. 6장의 원서 중에서 한 장만이라도 교육대학에 써달라고 애원했건만 딸아이는 가볍게 무시하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에 몰빵했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갈 때도 미국이라면 총기사건과 마약 그리고 인종차별을 먼저 떠올리는 나는 반대했지만, 딸아이는 제 뜻대로 비행기를 타버렸다.

 

휴학하고 인턴을 할 때도 나는 그럴 시간에 차라리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권했지만, 딸아이는 1년을 꽉 채워서 휴학하고 인턴으로 근무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룬 성과는 우리 부부의 반대를 무시한 결과물이다. 더구나 작금의 학교 상황을 보아하니 딸아이가 우리 말을 듣고 교대에 덜컥 진학했다면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도 못 감고 죽을뻔했다. 어쨌든 조만간 부모의 뜻에 반하는 딸아이의 결정에 또 서서히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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