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으로 기억된다. 네팔의 어느 깊은 산골에서 재배되는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골짜기에서 맑은 시냇물이 흘러내리고 냇가에는 예쁘고 깨끗한 돌멩이들이 널려있다. 마을에는 자동차도 없고 집집마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을 한두 마리씩 키우고 주로 하는 농사는 비탈진 밭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일이었다. 커피는 천혜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뜨거운 태양과 비옥한 땅을 이용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그야말로 무공해 속에서 사람이 일일이 커피를 따고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다. 그리고 말린 커피를 포대에 담아 낙타에 실고 몇 십리 떨어져있는 한국공정무역연합사무실까지 가지고가 파는 네팔 사람들을 보았다. 그 프로를 본 뒤 네팔하면 거대하고 아름다운 산이 생각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맑고 순수하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히말라야산과 에베레스트산이 있어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네팔이라는 나라에 가슴 먹먹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를 읽으면서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고 경제개발이 미치지 못해 어렵기는 하지만 순수하게 살아가는 라크슈미의 가족들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어렸을 때야 어렵게 사는 것이 아타깝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내가 가족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은 많이 한다. 라크슈미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밖에 나가 가정부로 일을 하게 되면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이모라 부르고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을 따라 무작정 나서게 된다. 이모라 부르는 사람을 따라 나설 때부터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사람으로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도록 하고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은 사람은 정작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마음속으로 ‘세상에는 파렴치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야. 좋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나를 건드리는 심기를 달래기 위해 보호막을 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경 속에서도 한 가닥의 희망을 놓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라크슈미. 서로 같은 환경과 처지임을 알고 도와주려고한 차를 파는 소년. 낯선 땅을 밟으면서 줄곧 당하기만 했던 라크슈미는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손길마저도 믿지 못하는 현실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도 힘없는 어린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유린되는 사례들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기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