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는 1960~70년대다. 그 때도 자식들을 많이 낳았고 먹을 것도 없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시절 찔레와 칡넝쿨을 벗겨 먹었고, 비가 오면 우산이 없어 비닐을 뒤집어쓰고 학교에 갔던 기억도 있다. 하물며 이 보다 더 먼 일제강점기 때 여성의 삶은 더욱더 험악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는 조선이 웬수다. 힘없는 나라 때민에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은 기라. 포와는 조선이 아니니까네 지킬 나라도 없을 기 아이가. 거 가서는 오로지 느그 생각만 하면서 아 놓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그라. 그기 내 소원이다.”------122쪽
포아로 떠나던 날 아침 이렇게 말하던 버들이 엄마. 고달프게 살아가는 조선의 엄마이다. 엄마의 말대로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진 홍주, 송화와 조선에서 사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큰 꿈을 가지고 꽃다운 나이에 사진 한 장으로 결혼(사진결혼)을 하고 포와(하와이)로 가게 된다. 꽃목걸이 레이를 목에 걸어주며 환영을 해줬지만 포와에서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었다. 또한 하와이 한인사회는 조선에서 온 그녀들에게 차별과 억압을 퍼붓는다. 그 모습은 백여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서도 이민자, 이주민 여성, 외국인들이 겪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가 살던 터전을 떠나 의지할 곳도 없는 곳에서 터를 잡고 살기 위해서는 억척을 부리지 않으면 안된다. 세 친구들은 좌절하면 다시 일어서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이민 1세대 어머니들이었다.
조선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면 나라 잃은 설움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나라가 힘이 없으면 나도 힘이 없다는 것을 안 교민들은 최선을 다해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후원금을 보내고 태극기도 제작한다.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326쪽
처음으로 세 친구가 모여 해변에 놀러 갔는데 파도가 이는 물보라 마다 무지개가 섰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무지개를 본다. 서로를 의지하고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기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버들은 자신도 공부시켜 주고 새 세상을 살기위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딸을 곁에 잡아 두려고 하는 욕심을 버리고 딸이 꿈꾸는 세상을 찾아 훨훨 날아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암만 멀리 가도 여가 니 집인 걸 잊어삐리지는 말고”-----3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