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동안 페미니즘 크리틱 손희정이 싸우고, 다시 써온 것들을 기록한 칼럼집이다.
칼럼이라는 장르는 그 시대의 화젯거리를 다루고 있는만큼, 그 시점에서 읽으면 날카롭지만,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아, 이런 일도 있었지'하는 정도로 생각되며 무뎌지는 경우가 많다.
<다시, 쓰는, 세계>를 처음 읽었을 때, 실은 그런 무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을 대하는 내 태도가 틀린 것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다시, 쓰는, 세계>는 4년 전부터 쓴 칼럼들이지만,
여전히 날카롭다.
책의 첫번째 글 '괴물을 침묵을 먹고 자란다'라는 글로 '소라넷'을 다루고 있다.
처음에 이 꼭지를 읽었을 때만해도, 나는 이 글을 날카롭게 느끼지 못했다.
디지털 성범죄물 문제는 느리지만, 그래도 해결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소라넷'은 폐쇄되었으니까,
하지만 이 칼럼의 '소라넷'부분을 'N번방'과 '조주빈'으로 바꿔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끈질기게 살아남아, 잔인하게 역사의 시계를 뒤로 되돌린다.
손희정이 말한대로, '이전 상태로 또' 돌아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손희정은 '다시' 써내려가며 버틴다.
하루 빨리 이 책의 글들이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게 되기를,
그의 말대로,
관성과 탄성의 '다시'를 무력하게 만드는 건 결국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포기하지 않는 '다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