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처음이었다. 박완서 작가를 접하게 된건. 아주 오래전이었고. 난, 어렸고, 지금은 제목과 느낌 빼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느낌이 꽤나 오묘했다. 뭔가가 끄집어내지고 있는데 다 꺼내지진 못한 것 같은. 뭔가가 느낌이 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온 세월이,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상이 너무 좁았던 것이다. 밴다이어그램의 교집합 지점이 너무 작았다.
세월이 지나 이젠 나도 이런 저런것들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해뿐만 아니라 이것이 무슨 느낌인지도 어느정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기나긴 하루>라는 책을 집어 들면서, 너무나도 짧은 나의 하루들을 생각했다. 하루가 길고 길었던 어린시절의 날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시간은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중단편들이 직접적으로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각각의 소설들은 나를 어디론가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느껴본 적 없는 것들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마치 과거의 어느 순간인 것 처럼. 70년대 80년대 쓰여진 소설들이 생생하다. 묘한 향수와 함께 40년을 날아와 지금의 정서와 딱 맞아떨어져버린다. 아마도 인간 깊숙이 자리한 우리의 인간성이나 정서는 40년 전이건 지금이건 같기 때문인가보다. 세월이 가면 모든게 변한다하는데 4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을 읽으면서 모든이들 안에서 흐르지만 변하지 않는다는게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고보니 이건 고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기도 하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씩 꽤 오래전이 되어버린 어느 날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대학교때 자주 가던 용산 전자상가, 한 여름밤 눅눅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친구들과 함께 걷던 서울의 한 공원길, 이런 나의 추억들과 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지만,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이런 추억을 떠올릴 때와 같은 아련함이 새벽 안개처럼 깔린다. 그래서인지 더 더 찾게될 것 같다. 이제는 가버리신 고인이시지만 이런 우리들을 위해 40여년간 열심히 글을 써주셔서 한 독자로서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