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책들을 정리하려고 보니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냥 읽었다는 느낌만 있는 책도 있고, 블로그에 끄적거린 것도 있고.. 기억을 소환해서 세어보니 네 달 동안 읽은 책은 20여권. 약소하지만 기록으로 남겨봐야지.
폴 오스터
(1947.2.3.~2024.4.30.)
내가 좋아하는 작가하면 떠올릴 수 있는 폴 오스터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어쩌면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예감했었는지 모르겠다. 우연찮게도 <4321>을 한참 읽던 중이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에는 한 곳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의 인생이 그려진다. 나의 이십대 역시 그러했기에 폴 오스터의 소설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의 책을 읽어온 결과 이십대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우리 인생도 어딘가에 정착되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다양한 선택으로, 우연으로, 혹은 운명적으로 퍼거슨의 네 가지 인생은 다른 종착지를 향해 내달린다. 처음에는 이런 서술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너무 헤깔려서 다시 1.1 2.1 3.1 순으로 읽었다. 아직도 퍼거슨의 인생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폴 오스터의 새로운 책들은 볼 수 없지만 그의 작품 안에서 작가는 살아 숨쉬고 있으니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책임지지 못할 연민은 상대방에게는 독이 된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값싼 연민을 함부로 품지 말자. 츠바이크 특유의 한달음에 내달리는 심리묘사는 역시 대단했다.
이 책은 몇 년전 속초 동아서점에 갔다가 산 책. 오랫동안 책장에 자리 잡고 있다가 읽게 되었다. 서점 주인의 어머니이신 듯 한데 아이가 이 책 저 책 만지니까 신경질적으로 나무라셨던... 기억이 있다. ㅠㅠ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이 있냐고 물었더니 신간이냐며 반문하셨던...
시작은 펠리시아의 여정이었다. 연애 문제 때문에 가출한 소녀가 위태롭게 거리를 헤매는 이야기. 그러다가 힐디치의 살아온 여정으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진다. 힐디치는 펠리시아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을 죽인 살인범인가? 어...어... 아니다. 그냥 과대망상의 정신병 환자인가. 이야기는 다시 펠리시아로 돌아오고 그녀를 둘러싼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를 테면 종교를 전파하려는 사람들. 숙소를 제공하거나 음식을 배풀거나 무료 진료소 같은. 정교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능력이 남다른 윌리엄 트레버. 사둔 <마지막 이야기들>도 읽어야겠다.
불행한 결혼생활의 한 줄기 빛, 매트에 대한 이선 프롬의 말과 행동이야 수십년간 반복되어온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 예상되지만.. (그런데도 읽는 순간 몰입하게 된다)
썰매 사고 이후 (썰매라는 시대적 산물이 연상되어 우끼고 재밌다 ㅎㅎㅎ) 더 불행해진 두 여자와 이선 프롬의 기이한 삶에 할 말을 잃는다. 아마도 이 책의 가장 충격은 지나가 그렇게 자리에 누워버린 매트를 돌보게 되면서 생의 활력을 찾는 장면.
사실 이선 프롬과 결혼하게 된 이유도 그의 어머니를 병간호 하는 것이었지. 좀 극단적이지만 어쩌면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돌보면서 생의 의지를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순수의 시대>도 읽어봐야겠다.
소설집을 이렇게 처음부터 부담없이 쭈욱 읽은 게 오랜만인 것 같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처음 전하영의 소설을 접하고 좋게 기억하고 있다고 만난 작가의 첫 소설집 역시 좋게 읽었다. 이제는 그 기분들을 떠나왔지만(소설에서 읽었던 어떤 시절에 많이 했던 생각들) 다시 떠올리면 조금은 쓸쓸했고 좀더 많이 걱정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것들을 다시 상기시켜 주어서 이 소설들에게 고맙다. <남쪽에서>에 나오는 그 소설가는 누구일까. 정말 궁금해진다... 보이지 않아도 쓰이는 어떤 삶들. 독서라는 것이 내가 이야기 속에서 만날 누군가의 삶의 여정을 수집하는 일 같다. 다음 작품도 많이 기다릴 것 같다.
오.. 이토록 사랑스러운 관찰일지라니. 읽는 것 만으로도 주변의 동식물을 찾아 가벼운 차림으로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은.
엄마의 어떤 말, 행동 양식들은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닌다. 제목처럼 애착은 사납기도 해서 나의 정신을 지배해버린다.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저자처럼 치열하게 쓰지는 못한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게다가 유년기라니) 기억하지도 못하고, 쓰기 시작하며 들여다보게 되는 잊혀진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이 가슴 아픈 것도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여성의 삶 아니 인간의 삶이라는 게 있을까. 아마도 없겠지. 제대로 살지도 못했는데 세월이 가버린다. 이건 엄마가 할 소리가 아니라 이젠 곧 나에게도 닥칠 일. 그런 과정에서 이런 책을 만나 다행이고 조금 위안이 된다.
고닉의 책 두 권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행복할 일!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p.153
예술을 통해서 나의 고통을, 주변의 사람들을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글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이야기, 음료는 모두 내돈내산이었다고 한다.
별 모으기 같은 건 나는 정말 관심이 없는데 이 책을 읽으니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제주 유기농 녹차 까지는 아니고 오설록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깔끔하고 커피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 티의 세계로 빠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선물했다. <혼자여서 좋은 직업>은 생각보다 번역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 아쉬웠다.
모든 글에는 딸 정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더불어 치매인 노모의 이야기에도 마음이 가 가슴이 아리기도 했고 재밌기도 하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에는 친구와 떠나는 동유럽 패키기 여행을 재밌게 읽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사이가 좋은 시절에 처음으로 유럽 패키지 여행을 떠났는데...
이 글에 나온 그 장소들을 다녀왔던 것일까...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예전에 권남희 에세이 중 한권을 집어들었다가 내 취향이 아니라면서 내려놓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처 3권을 읽을 정도로 재밌었다. 취향이 변했나보다.. ㅎㅎㅎ
다음 에세이가 나온다면 바로 읽을 태세..다음 책도 기대합니다!!
맺음말의 마지막 판이 도착된 다음날 영면하신 서경식 선생님. 그 무슨 운명의 장난같은 일인가. 평생을 개인사적 고통으로 힘들게 사셨고, 어쩌면 그로 인해 타자의 고통에 더 예민하게 사셨던, 선생님의 인생은 역자의 맺음글에서 표현된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파리에서 날아와 현재는 익산에 살고 있는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
어느 부분에서 새벽에 읽다가 눈물을 훔쳤다.
왜 아무도 우리에게 꿈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도 무엇이 되지 않았을 때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무엇을 하든 나로서 사는 일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p.72
육아에 지쳐 피곤이 짓누르고 할 일은 늘 산더미며 진척은 없고...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거장들도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정말이지 금정연은 너무 피곤했다. ㅎㅎㅎㅎ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일기책들을 나도 꽤 읽었네? 나는 다른 사람의 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보다.
사랑스러운 너대니얼 호손의 육아일기?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내가 줄리언을 눕혔을 때 시계는 저녁 일곱 시를 향하고 있었다.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처음으로 아이의 세상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낀다.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테지. <줄리언> p.23
하하... 빵 터졌다.
그 밖에 현대문학의 <헨리 제임스> 어떤 계기로 헨리 제임스에 입문하게 되었나 ㅎㅎ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 좋게 읽었는데 메모 해 두지 않아서 기억이 잘... (죄송해요 권여선 작가)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작가에 따라 편차가 조금 있다.)
이소영의 <식물에 관한 오해>
에밀 졸라 <제르미날>
을 읽었거나 읽는 중이다.
너무 심한 병렬독서로 인해 머릿속 생각들이 분산적이다. 더운 여름에 들어섰지만 에어컨 바람 쐬며 심기일전 독서에 좀 더 매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