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기네스 펠트로가 우아한 금발에 초록빛 원피스(투피스?)를 입고 영화의 마지막에 핍과 재회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기네스 펠트로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해비셤의 으스스한 저택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다.
책으로 찾아 읽으니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우와 이런 내용이었구나를 알게 되면서 영화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진다.
제목 그대로 위대한 유산(기대?)을 핍은 누군가에게로 부터 받게 된다. 처음에는 당연히 해비셤이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매그위치가 자신을 위해 뒤에서 힘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가 이책의 반전이랄까. '신사'라는 신분 상승에의 욕망을 꿈꾸면서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부정하고 괴로워하는 핍. 핍을 통해서 엉망인 자신의 인생을 바로잡고 싶은 매그위치의 욕망. 사랑에 대한 복수의 심정으로 에스텔라를 양녀로 삼아 키우는 해비셤의 욕망 등이 다채롭게 역시나 찰스 디킨스의 통속소설 같은 면모, 재미와 어우러지며 지루한 틈 없게 전개된다. 오히려 핍과 에스텔라의 사랑은 이제 별 관심이 없네 하하. 가장 대중적인 것이 예술적이라는 찰스 디킨스에 대한 평가가 나는 마음에 든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일단 무조건 재밌으니까...
칠백여 페이지가 되다보니 다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읽는 내내 자유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렇게나 긴 서술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신기하게 다 읽고나니 이 책의 이야기가 비록 미국의 백인사회라는 특수한,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사례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이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하는 과정이라는 보편성을 갖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는 줄곧 부모의 그늘에서 탈출하고픈 자유를 느낀다. (패티의 자녀들, 제시카와 조이)
조이는 그런 부모를 무시하고 자유를 찾아 코니와 사귀지만
결국 순애보 같이 한결같은 여자친구의 사랑도 부담스러워하며 자유를 찾고 싶어한다. 다행히도(?) 둘은 결혼하기에 이른다.
모범생 같은 남편으로부터 패티는 우연히 그의 친구와 외도를 하게 되고,
남편 월터 역시 같이 일하는 젊은 여성과 바람을 핀다.
결혼을 택한 그들이지만 결혼의 굴레에서 지난 날의 자유를 찾고 싶어한다.
패티는 그래도 자신에게 불어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자서전을 쓰게 된다. 패티의 성장기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여정이 두꺼운 소설로 형상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생을(인생에 보편성란 것이 있다면) 대변하기에 이른다.
뭐 이렇게 막장인 인생들인가 싶다가도, 일어나지 못할 것이 없는게 또 인생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각자의 캐릭터들이 선명한 빛깔을 가지고 인생의 어느 시점의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방대한 소설의 미덕 같다.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인생이 소설로 씌여진다면 이런 식으로 서술될 수 있겠구나, 하며 많은 문장에 공감을 했던 소설.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그런 인간들이 그 역에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양심적이고 정겨운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던 것 또한 분명 내 평범한 인생의 한 부분이었다. p.92
양심적이고, 정겹고, 좋은 사람들....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이루는..
밥상이 단순히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음식물을 공급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부엌에서 엄마가 툭탁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란 유년시절은 향수와 함께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래서 밥상을 차리는 사람의 의무만 커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가족의 구성원 중 특정 사람에게만 가사노동이 집중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불행이 커지는 일일터..... 그 균형을 찾는 것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최근에 나온 신간을 읽으려다 이 책을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다. 목수정의 책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는데 곰국부터 육계장도 뚝딱 해낼 수 있는 음식 솜씨가 부럽고 조금은 반성하게 만든다.
내가 정말로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대부분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심지어 시간과 함께 창조되기도 한다니...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다른 누군가의 기억도 심지어 나의 기억조차 믿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좀더 관대(!)해졌다고나 할까.그리고 수면의 중요성. 내 삶도 찾아야하지 않겠냐며 거의 삼년간 새벽 5시에 일어나 독서를 하곤 했는데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잠을 줄이면 안되겠다 ㅠㅠ
무언가 가물가물해지는 일이 늘어나고 단어가 점점 생각나지 않게 되더라도 충분한 수면과 휴식, 건강한 먹거리와 함께하며(생각나지 않으면 나중에 생각나겠지라고 넘기거나 검색해보면 된다.. 얼마전에 생각나지 않았다가 생각난 장소가 파리의 퐁피두 센터 ㅋㅋ) 느긋하게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관에 부합하는 기억들을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p.98
너무나 완벽한 부모너무나 완벽한 친구너무나 완벽한 직장상사.. 는 생각만해도 숨막힌다.우리는 어딘가 틈이 있고, 구멍이 있고, 그래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끌리고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가.이 책에 나오는 무슨 일에 '장혀'라고 칭찬하는 할머니처럼 틈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첫째도 허술하고 둘째도 허술할 것.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부모가 되기에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라기 때문에. p.143
나는 지방에서 태어났고, 지방에서 성장했으며, 지금도 지방에서 살고 있다. 그건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내 감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p.319
나 역시도 그러한데 나의 환경인 지방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었다. 진만과 정용의 비참한 생활을 해학적으로 읽다가.... 결말은 결말만은 이러지 않았어야 했다고 작가를 원망해본다. 나는 그래도 빛을 따르는 사람이니까... 슬프다.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 찬 이 몸'을 만든다. P.273
작가의 말.
나 역시 힘든 어느 순간에나 빛과 희망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므로... 김연수 작가가 좋다. 이 책은 시간이 된다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저자의 아버지가 그리스어를 배우려 했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통역이나 번역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 있다. 어떤 단어를 다른 언어의 단어로 치환하는 일..에 그렇게 많은 사전이 동원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에 김영하북클럽에서 읽었던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도 인용되어 나온다. 이 책 역시 재밌게 읽었다. 어떤 단어를 알게 되어 사고의 영역이 확장되는 일은 한국어가 모국어로 완전히 굳어진 어른이 된 이후에도 신기한 일이다. 새롭게 사고하고 싶다면 고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시도해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신유진의 에세이와 예술가를 간단히 소개한 <예술가의 일>이라는 책도 읽었다. 내가 잘 모르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와 좋았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을 쪼개서 읽기에 좋았다.
펀자이씨 만화 에세이도 읽었는데 재밌었다. 내향적인 성격에 많은 동감을 했는데 이 성격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를 않네요 ㅋㅋㅋ
영하 10도 정도도 아주 춥게 느껴지는 겨울이 와버렸네요. 추워서 실내로만 돌아다니는 요즘이라 가까운 중고서점에 가서 내년도 스누피 다이어리와 스콧님 서재에서 본 길다란 문진도 사왔습니다 ㅋㅋ 별거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요.
모두들 따뜻한 12월 보내세요. 마음까지 따뜻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노력도 필요한 것 같아요. 신유진의 에세이에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잘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더라구요. 남은 12월은 그렇게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날들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