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 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읽다가 알게 되었다. 아마 수년전에 길가의 중고서점인가에서 샀던 것 같은데 그 책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민음사판으로 읽어보았다. 쿠오 바디스가 무슨 뜻인지 그냥 궁금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1권은 아름다운 용모의 리기아를 얻기 위한 비니키우스의 활약상?이 그려진다. 젊고 미래가 보장되는 그야말로 훈남인 비니키우스는 처음에는 마음만 먹으면 세상 절세미녀인 리기아를 손에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도인 리기아는 속세의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 차이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니키우스도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의 세계로 빠져든다. 영혼을 사랑한다는 말이 바로 이 둘의 사랑을 일컫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후에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난다. 방화범을 그리스도교 교도들로 누명을 씌우고 처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이 2권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이 책의 실로 놀라운 점이라면 어떤 장면을 그리는 뛰어난 묘사이다. 네로의 궁에서 벌어지는 사치스러운 향연이나 대화재의 장면, 신자들의 학살을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그려내 감탄하게 된다. 단순히 자신의 시를 완성시키기 위한 소재거리로 로마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인 네로, 이 역사소설에서 그려지는 네로의 모습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궁금해진다.
이 소설의 결말이 단순히 비니키우스와 리기아가 살아돌아오고 그리스도교의 신은 위대하다로 끝났다면 특별할 것이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탐미주의자 페트로니우스의 죽음이 있어서 비로소 이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비니키우스는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를 통해 간절히 간구하는 자신의 기도가 리기아를 살려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페트로니우스는 리기아를 살린 것은 누가 보아도 우르수스이고 경기를 관람하던 로마의 민중이 아니더냐고 되묻는다.
너희들의 신이 행복의 근원이라면 그 신을 믿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나의 행복이 될 수는 없다고 페트로니우스는 말한다. 믿어서 행복할 것인가, 만약 믿는다면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나는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읽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들이 맴도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