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아 3호가 나왔고 여기에 "열 여섯 소녀의 잠옷 그리고 탐정의 실패"라는 제 글이 실렸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케이트 서머스케일이 <The Suspiscions of Mr Whicher>라는 아주 훌륭한 책을 써놓았기 때문에 사실 저는 그걸 요약하는 정도만 했어요. 그런데 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주어진 원고량에 맞게 분량을 줄이고 또 줄이느라 그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1860년 영국 윌트셔 지방 로드힐 저택에서 일어난, 프랜시스 새빌 켄트라는 세 살짜리 남자아이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 이야기예요. 대중이 탐식하던 범죄 이야기가 뒷골목 빈민가가 아니라 점잖은 부르주아 집안의 철옹성 같은 내부로 바뀌게 되고, "바로 이 집안 식구들 가운데 범인이 있다"는 추리소설의 전형적 설정의 시초가 된 실제 사건이지요. 이 사건이 뛰어난 탐정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고 미궁에 빠졌고, 대중들의 "탐정열"을 자극했으며, 결국 이 사건을 바탕으로 탐정소설의 기원으로 꼽히는 윌키 콜린스의 <문스톤>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건 5년 뒤엔가 죽은 아이의 누나 콘스탄스 켄트(16세)가 범행을 자백해 사건이 마무리 되지요. 그렇지만 콘스탄스의 자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은 사실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세기 넘어서까지 계속 사람들의 호기심과 의문을 자극했지요. 과연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었을까?
에르퀼 푸아로는 <시계들The Clocks>에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콘스탄스 켄트라는 가엾은 소녀가 있었지. 틀림없이 사랑했을 어린 동생을 살해해야 했던 진짜 동기가 무엇이었을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어. 하지만 나한테는 아닐세. 그 사건 기록을 읽자마자 나한테는 빤하게 보였다네." 그러면서 뭐가 보였다는 건지는 말을 안 해요. 아 정말 이 잘난척하는 영감탱이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지 않은가요? 그런데 다행히도 서머스케일이 2008년에 책을 내서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스포일러가 되면 안 되니까 얄밉지만 푸아로처럼 더 이야기 안 하고 여기에서 글을 맺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