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마다 자려고 누우면 2호가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는 이야기가 없거나 귀찮아서 안 해주면 잠이 안 온다고 낑낑거리면서 잠들기 힘들어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일단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면 꼭 결말까지 가기 전에 중간쯤에 색색거리고 잠이 들어 버린다.
그래서 어제도 편히 자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겠다.. 하고 머리를 굴리다가 생각난 게 내가 어릴 때 읽은 이 이야기다.
(인종차별적 내용이라고 해서 한동안 안 나오다가 요새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같다. 그런데 인종차별적 단어를 제목에 그대로 넣은 책도 있네?)
어릴 때 내가 본 책은 2도 인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컬러인쇄한 동화책이 매우 드물었다.
줄거리는, 멋지게 차려 입고 길을 나선 삼보가 "잇템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하는 호랑이들을 만나 웃옷, 바지, 우산, 장화까지 모두 털렸는데, 이 호랑이들이 삼보를 쫓아 나무 주위를 빙빙 돌다가 너무 빨리 돌다 보니 원심분리되어 '버터'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삼보 옷가지도 되찾고 엄마가 "버터"로 "팬케이크"를 만들어줘서 배가 터지도록 맛있게 먹었다는 결말. (내 기억이니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이 이야기에서 가장 신비로운 점은 호랑이>버터>팬케이크의 변화과정이다. 도대체 이 세 가지의 성분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호랑이와 버터 맛의 팬케이크를 상상하면서 야릇한 미감의 자극을 받았던 것이 떠오른다. 이 맛의 비밀을 밝히면 호랑이버터칩을 상품화할 수 있을 텐데
아무튼, 둘째는 이미 잠이 들었고, 첫째만 자지 않고 결말 부분을 들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X소리"라는 격렬한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원래 그런 거야. 좋은 책은 다 팬케이크로 끝나잖아."
"무슨 책?"
이런 거.
특히 <코끼리와 버릇없는 아기>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초기 그림을 볼 수 있다.
팬케이크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