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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고비 너마저

이 날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걱정했는데 점심에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사실 17일이 내 생일이자 우리집 둘째 생일이다. 둘째 친구들 초대해서 잔치하고 놀게 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날짜가 다가오면서 도저히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아 그냥 보내게 됐다.) 친구가 고맙게도 손수 케이크를 구워서 비가 오는데도 낑낑 들고 왔다. 카페에서 초에 불을 붙여주겠다고 했는데 간곡히 거절할 수밖에 없어 미안했다. 

 

저녁에는 이 책을 읽었다. 

제목만 봐도 눈물이 나서 차마 읽지 못하고 미뤄두던 책이다. (<시사인>에서 샘플북을 보내 줘서 샘플북만 읽었을 때도 폭풍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이 날만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가 이 책을 두고 '직접 겪은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랴...' 라고 했던 말도 생각이 났다.  


책을 펴자마자 눈물이 줄줄 흐르더니 23쪽에서 더 이상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둘째가 내가 끙끙거리는 걸 도저히 못 보겠는지 내 몸에 올라타더니 눈을 가리고 책을 뺏아 버린다. 평소에는 나한테 같이 놀자는 말을 잘 안 하는데 (주로 형이랑 논다) 놀자고 자꾸 잡아끈다.  


그래서 내 숙제는 23쪽에서 끝나고 말았다. 어쩌면 잊지 않기 위해서 날마다 조금씩 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잘 시간이 되어 씻고 잠자리에 누운 둘째가 춥다고 한다. 오늘 날씨가 유난히 서늘했다. 친정엄마가 만들어주신, 수건을 꿰매어 만든 자루 안에 보리를 넣은 찜질팩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갖다 줬더니 꼭 끌어 안고 "다행이다."라고 하면서 잠이 든다. 


둘째가 잠든 뒤에 첫째가 잠자리에 누운 채로 (어디에서 일베 관련 기사를 보았는지) "광주랑 노무현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묻는다. 어디에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1961년부터 현재까지 내가 아는 대로 대략 정치사를 훑어서 연결해 주었다. '극우'가 뭐냐고 해서 이것도 설명했다. 거의 삼십 분 정도가 걸렸다. 첫째가 이기는 것보다 약한 사람의 편에 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열심히 이야기를 듣는 걸로 보아 그랬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날 하루가 그리 헛되이 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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