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을
봤다. 앨런 튜링이 2차대전 때 독일군 암호 생성기 '이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컴퓨터를 만드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때에 친구가 암호에 관한 책을 보여주자
튜링이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는 거. 그거 내가 맨날 하는 일인데.
튜링이 일상언어의 함축적 의미나 상대의 의도, 맥락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고(심리학 용어로는 '마음 이론'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임상적으로 말하면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기본틀은 종전 뒤 튜링이 간첩혐의로 형사에게
취조를 받으며 들려주는 자기 삶의 이야기인데,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에 이야기 전체가 튜링테스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튜링이 형사에게 "나는 기계입니까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하고 형사는 "나는 판단할 수
없다."라고 대답하면서 취조가 마무리된다.
튜링이 1950년
논문에서 제안한 튜링테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상대가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판단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사람처럼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대략 뭐 이런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튜링테스트를 "인공지능의 우수성을
판별하는 테스트"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튜링테스트라는 개념이 중요한 까닭은,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을 예언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사고방식의
다양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한다"가 아니라
"사람이 기계처럼 생각한다"라는 거다.
이를 테면 튜링은 자신의 사고 체계와 기계의 사고 체계
사이에서 큰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다. 튜링이 검사자로 튜링테스트를 하거나 피검자로 튜링테스트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작년에 '유진
구스트먼'이라는 인공지능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언론에 보도되고 시끌시끌했던 적이 있다. 온라인으로 유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나도 대화를 나눠 보았는데, (물론
나는 유진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화를 했으니 엄밀한 튜링테스트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옛날 MSN 메신저 시절에 가끔 대화를 나누곤 하던 "심심이"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30퍼센트의 비율로 통과했다"고 하면, 그 말은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달했느냐"의 지표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기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폐스펙트럼장애, 동성애자, 여자수학자) 핍박받는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억누르거나 은폐하고 주류와
비슷한 모습을 가장하는 "모방 게임imitation
game"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튜링테스트는 기계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사람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라고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기계처럼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아닙니까? 나는 동성애자입니다. 나는 사람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