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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피움
  • 태연한 인생
  • 은희경
  • 11,700원 (10%650)
  • 2012-06-11
  • : 4,786

그리고 이미 의심이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자존심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인생을 자기가 아는 방법으로 보전하려는 의지였다. 그녀는 자기가 의존해온 틀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긍정과 교활한 평화가 어떻게 사람들을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안으로 끌어들이며 또한 자신도차 신뢰하지 않은 채로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앞장서게 만드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의심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으려면 의심스러운 것을 의심하지 않아야 했다. 그 생각은 오랫동안 쥐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가 손안에서 여지없이 바스러지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찔렀다. 언제 또 시동이 꺼질지 알 수 없는 자동차에 실려 흔들리며 말없이 앞만 바라보던 어머니는 불현듯 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갖다댔다. 낯설어진 세계, 그리고 사랑의 상실에 조의를 표한 셈이었다. p14

 

사랑에 빠진 여인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류의 아버지가 포착하고 전율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대개 이미지로 구현된다. 그렇게 때문에 수많은 서정적 이야기들은 연인의 포옹이나 결혼식으로 끝이 나고 그런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지는 생활과 이데올로기라는 서사의 세계는 이미지의 세계와 인과관계가 없는 다른 영역이다.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쏘인느 광선 같은 것이고 자체로 완결되기 때문에 진위 같은 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의심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았다. 빚 같은 것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사의 영역에 속한 어머니의 삶을 이끄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패턴이었고 그것은 뜨개질 본처럼 이어져가야만 했기 때문에 절단면의 상처는 깊었다. 그것은 비용을 요구했다. 서사의 세계에 속하지 않았던 류의 아버지는 단독자인 셈이었다. 고독은 피할 수 없었다. 반대로 류의 어머니는 서사의 세계를 택했고 그 부조리함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다. p16-17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매번 영화가 끝난 뒤 고통이라는 침전물이 담긴 자신을 조심스렇게 움직여 환한 극장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 몫의 인생 속으로 태연히 되돌아갔던 것이다. ……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서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p72

 

세상에는 '나는 나야'라는 아웃사이더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나는 남과 달라'라는 권력적 소수가 되어버리는 일이 흔했다. p96

 

무엇을 포착하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할까. p103

 

자신의 출생을 믿지 못하는 자가 자유이다. 숲 속에 떨어진 알에서 태어나는 자가 자유이다. 하늘에서 떨어져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않으며 대지로 내려오는 자가 자유이다. p229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됬던건, 이제부터 한국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외국작가의 책은 아무래도 번역을 한번 거치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문장 하나하나의 구성을 알기 쉽지 않다. 하지만 국내 작가들은 나와 같은 언어를 쓰니까, 내가 그들이 의도한 그 문장들을 하나하나 마주할 수가 있다. 뭐, 그 의도를 다 이해하거나, 원하는 대로 이해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내 문장력에도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태연한 인생' 표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내용이다. 이름도 낯선 요셉과 류의 이야기. 아니 어쩌면 류의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내가 '태연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낀 사람이 바로 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고 반한 한 남자의 구애끝에, 그녀는 그 사랑을 놓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태연하게. 그때 그렇게 설레였던 사랑을 태연히 접어두고 자신에게 끈질긴 구애를 펼쳤던 남자와 살아간다. 그러나 그 삶 속에서 어느날 문득 일을 마친 시간임에도 데리러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며, 해가 지는, 그 노을을 바라보며, 길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고독과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그러한 고통도 태연히 숨긴체 살아간다. 온가족이 소풍을 가기 전, 남편의 분륜 여자가 전화를 해왔지만, 잠시 멍하게 그대로 멈춰져있던 그녀는, 자신의 안전벨트를 채우는 남편의 눈에 갖힌 채 또 태연히 살아간다. 참 힘들고, 고독하고, 고통스럽고, 아픈 일인것 같다. 태연한 인생을 산다는 것은. 한 때의 뜨거웠던 그 순간을 잊은 채, 아니 숨긴 채 태연히 살아간다. 그리고 너무나도 화나는, 배신감마저 느낄법한 그러한 아픔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살아간다. 왜 일까. 류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전으로 이미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결국 류의 어머니는 예전에 설렘을 가득 느끼며 통화하던, 그 통화를 하며 남편이 반했던 그때의 그 사랑에게 돌아간다. 그런 뒤에도 그녀는 태연히 인생을 살았을까.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류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어머니의 삶을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에게서 떠나간다. 지속되지 못할 찰나의 뜨거움을 태연히 가슴에 묻고 살아가기 위해여. 더이상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하여 떠난다. 류는 행복했을까.

남겨진 요셉은 어떨까. 요셉은 류의 어머니 이야기를 알까. 여전히 류를 기다리며 지냈지만, 막살 거울 앞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낯설고 늙은 모습이라 앞에 나서지 못한 요셉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을까. 사실 소설에서 요셉이 상당히 이기적이고, 냉소적이게 그려진다. 그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의 그런 성격은 아마, 태연하게 살아가기 위한 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몇몇의 교수님들을 떠올리게 하는 요셉을 모습이 낯설게 비춰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됬다. 겉표지와는 다른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다. 어쩌면 겉표지가 태연함으로 속 내용을 감추고 있는 듯도 싶다. 그렇다면 이 소설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지가 아닌가. 그래도, 좀 아쉽긴 아쉽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이렇게 태연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니, 살아가고 있다. 모든 찰나의 순간들의 감정을 꼭꼭 숨긴채, 아무렇지 않은 듯이 태연하게. 사실, 어떻게 해야 그 아픔이나 상실감을 잊어버릴 수 있는지 모르니까, 혹은 그 뜨거웠던 사랑과 열정을 어떻게 유지시킬 수 있는 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태연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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