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혼자 있다 보면 외롭고 따분하다.
그러면 온갖 상념이 밀려온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은 일들도 많으니까,
……
그러다 보면 결국은 매듭이 지어진다.
아마도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장소를 낯설어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때로 매듭을 짓지 못해 안달한다.
p16
눈을 떳을 때 부터 혼자 인 날은 내 생활을 하느라, 별 생각이 없지만,
친구들이 놀러왔다 다 가버리고나면,
그 휑함에 우리집이 이렇게 컸었나, 싶다.
그렇게 혼자 멍하게 있다보면 온갖 상념이 밀려온다.
대게 나를 더 고독하게, 그것도 혼자임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내가 책을 읽는 지도.
저 아내가 추리소설에 빠진 것 처럼,
내 상념들을 매듭짓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남편의 생활은 아주 규칙적이다.
나는 회사란 과연 어떤 곳일까 하고 때로 불가사의하게 생각한다.
한 사람의 어른을
-그것도 원래부터 규칙적이었다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성격의 한 남자를-
이렇듯 제압하고, 더구나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장소.
p37
회사란, 그런 것일까
나는 견딜 수 있을까
함께 있고 싶다기보다
함께 있지 않으면 더는 함께 있을 수 없을 듯한 느낌.
p62
결혼이란 제도로, 날마다 헤어질 필요없이 이제 한 집에 한 공간에서 만나는데,
후자의 느낌이 든다는 것은,
많이 불안하기 때문이겠지.
그 불안이 지금도 나는 서럽다.
남편은 잠이 들었는데,
나는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쾌함이 몸 안에 쌓이기 때문이다.
투덜투덜투덜, 만화에 나오는 잔소리 많은 마누라처럼.
p113
불쾌함을 없애기 위해, 잔소리를 한다.
딱히, 남편을 향한 불쾌감은 아니다.
근데, 어딘가, 그 어떤 감정이란 것이, 참 이상하게도...
이번엔 에쿠니 가오리가 '결혼 생활을 테마로 한 에세이를 여성지에 연재'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에쿠니 그녀가 결혼한지 3년 쯤 되는 그 시기일거라고, 책에 나온다. 항상 책에 실려있는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이 이야기들 속에 그녀가 느낀 결혼 생활들이 오롯이 들어 있겠거니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처럼 차분하고 담담한 글들이 참 그녀와 많이 닮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노우에 아레노가 쓴 작품해설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는 '행간'의 작가다.
그녀의 문장이 행간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을 퍼올리는 것이 그녀 작품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행복과 불행 사이.
사랑과 증오 사이.
혼자와 둘 사이.
온갖 사이 사이에 보이느 넋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고독'이라고 생각한다.
억만 가지 이야기가 존재할 가능성 속에서, 오직 나 혼자라는 고독.」
이 에세이집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기도 하고, 내가 지금껏 읽어왔던 에쿠니 소설들, 전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다. '고독' 그 키워드를, 에쿠니는 담담하게, 혹은 발랄하게, 혹은 무섭게, 밝게, 즐겁게, 당연하단 듯 풀어낸다. 그래서 나 또한 왠지 그러한 상황들에 당면하면 그렇게 고독을 두려워하면서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