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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書閣

비장이 찾아지지 않는다고 몸을 이리저리 굴리고 부풀리고 꺼뜨리는 닥터의 난처한 표정이 흥미롭다. 숨겨둔 살집이 있으신가 봐요, 건네는 소리는 의례적으로 다정하지만 나는 슬프다. 장작처럼 자꾸 건조해져 가는 것은 몸도 마찬가지라고 새 옷도 몇 벌 사 본 여름이었는데 지난해보다 5키로나 늘어난 것이다. 아, 그놈의 비장.  

읽고 있는 책들 중 어딘가에서 분명 본 기억이 있는데 무엇인지 가려내질 못한다. 늘어난 체중만큼 뇌를 잠식한 비계 탓인 것이다. 가령, 잠식은 누에가 뽕잎을 차근차근 갉아 먹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라거나 머리가 쭈뼛 서는 전율은 밤송이의 무시무시한 가시를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에서 나온 말이라는데, 다른 장기에 가려서 잘 찾아지지 않는 지라가 비장이며, 비장의 무기가 그것에서 비롯되었다는 문장은 다시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이 아닌가봐. 닥터가 찾지 못하는 비장 탓에 비만녀가 된 듯 해 슬프고, 읽은 책을 거푸 읽은 여러모로 쓸쓸한 저녁이다. 

산란한 꿈에 밤새 잠을 설치고 몇 달을 미뤄 산 [나무사전]을 새벽빛에 읽는다. 나무를 보며 살고자 했던 유일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그나마의 궁금을 책으로 메운다. 선물하겠다던 마음을 사양하며 이 책은 내게 ‘김씨 표류기’의 자장면 같은 책이에요, 하고 웃었던 이른 봄의 일을 즐거이 떠올린다. 누가 대신 해줘서는 안 되는 궁극의 것이었다면 그도 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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