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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書閣
 

그는 빳빳하게 다려진 흰 광목 베개에 양 팔을 엇갈려 괴고 오래된 소설들을 매일 두 어장 씩 읽었다. 건조하고 마른 손가락에 담배를 끼워 불을 붙이고 엎드린 채로 깜박 잠이 들면 타들어간 재가 바닥에 떨어져 노란 장판에 동그란 새 무늬가 생겼다. 그는 그렇게 열 몇 해를 보내다가 그 자리에 반듯하게 누워 죽었다. 가여운 그는 살고 싶었던 대로 살던 시절을 잊지 못해 때때로 오래 앓았다.  


며칠 전 읽은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이 문득 떠올랐다.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해서 욕망하는 것이 많았다던가. 크게 욕망하는 것도 없는 나는 살고자하는 대로 살지 못 하는 것이 쓸쓸하고 쓸쓸했다. 그 밤 음영이 분명한 낯선 수직의 방안은 가고자 하는 삶과는 다름이어서 깊은 통증이 왔다. 사랑으로 견뎌지는 것의 한계가 문득 궁금했다. 설터의 책은 내가 읽은 기억과는 달랐다.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다른 것들을 욕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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