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어떤 공감
  • 스톤 다이어리
  • 캐롤 쉴즈
  • 12,600원 (10%700)
  • 2015-08-10
  • : 786

슬그머니 아무렇지 않은 척, 2016년의 첫 글이다. 너무도 간만에 쓰는 글이라 낯설기까지 하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못하는) 요즈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있는 표지에 이끌려 2015년 마지막 날에 우연히 집어들게 된 책인데 때로는 이런 제멋대로의 충동이 도움될 때도 있구나 싶다. 참고로 표지는 바다 옆 방(Rooms by the Sea)이라는 표제를 가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이 책은 데이지 굿윌(혹은 데이지 플렛),이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둘러싼 스톤월 사람들 일대기에 관한 소설이다. 그녀의 인생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샌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관한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고 미래를 그려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어디론가 떠나거나 정착하며 살아가게 되는 일상적인 현실들을 지금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당연히 기억하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그것들은 희미하게 하나둘씩 퇴색되어 가고 또다시 닥쳐오는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며 기억하느라 앞선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또한 삶이라는 것은 어떤 '때'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생각들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그녀와 그녀 곁의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숨죽였다. 그녀의 부모와 자식들,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일에 관한 이야기들은 우리와도 별반 다를 바 없이 사소하고도 극적인 면들로 가득하다. (아니, 누군가는 이들보다 더 극적인 인생을 살았겠지만) 그렇기에 어쩐지 자꾸만 나 자신으로 하여금 비춰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도 가끔은 운명 같은 우연이 있듯 그들의 이야기에도 운명과 우연, 사건과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무섭도록 정확한 시간이란 존재에 이끌려 마무리되어 간다.


2015년을 마무리하고 2016년을 시작하려는 찰나, 결국은 그렇게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로 향해 가는 그녀와 그 후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이 느끼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이란. 태어나는 자라면 누구나 알게 되는 이 결말을,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오기 전까지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남의 일 구경하듯 가끔씩 상상해보고는 실제로 닥쳐서야 이젠 도저히 뒤로 도망칠 수도 없는 진짜 결말이 와 버렸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고선 자신은 끝내 마지막은 어떤 페이지로 쓰여졌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남들이 그 페이지의 결말을 마무리하고 또다시 자신들 또한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마무리를 하게 될 것임을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순간에도 나의 성가신 일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테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끝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참 이 책을 손에서 끝까지 놓기가 힘들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앞으로도 내 인생 속 페이지를 그때까지 써나가는 수밖에.


---

p.159 모든 인생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분명코 큰 소리로 읽히지 않는 그런 페이지가 있기 마련이다.

p.172 이 세상의 진정한 문제는 남녀 간의 잘못된 만남에서 기인하는 법이다. 이것이 오래전 터득한 내 소박한 견해이다.

p.187 부디, 제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주인공 데이지가 운명의 남편을 만나기 직전 기도하던 말)

p.205 최근 들어서 그녀는 어떤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느냐고 자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p.452 지금 플렛 할머니가 애쓰고 있는 유일한 일은 머릿속에 있는 사실들을 정돈하는 것이었다. 추억의 무게를 고르게 안배하는 일이었다. 인생의 한 막 한 막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이었다. 어떤 순간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애정이 솟아나기도 했다. 그것들은 한 줄에 꿰인 구슬 같았다. 그런데 그 줄이 점점 삭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그 일이, 상상력의 노력으로 결말지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억압되고 밝혀지지 않는 얘기를 무덤덤하게 회고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 그렇지만 이미 음미되고 축적되어 기왕에 존재하게 된 일들로 자꾸만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탐닉이나 다를 바 없다.

p.479 "난 평온하지가 못 해" 데이지 굿윌의 (입 밖에 내지 않은) 마지막 말.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