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하루키나 피츠제럴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아하게 된 순서야 어찌되었든간에.
물론 나만의 착각이 섞인 정의일 따름이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은 오래전부터 나는 그를 좋아해 왔다, 라고 보기에는 그의 은근히 많은 작품들을 다 기억하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딱히 원본을 술술 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를 잘 안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어디쯤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좀 특별했다. 목차를 보는 순간, 순전히 이건 레이(줄여서 나도 레이라고 괜히 불러본다) 팬들을 위한 안내집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그의 미공개 단편들. 역시 그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알코올, 부부들의 대화, 어떤 경계에서 느껴지는 낯섦과 서서히 융화되는 그 느낌, 그들의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소설 사이로 흘러가는 것, 마주해야만 하는 본질, 결국은 지지부진한 현실들. 혹은 어떤 깨달음. 참고로, 제목만 보고 그에게 쉽게 접근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전혀 달콤하지 않으니까. 처음 맛본 커피의 맛처럼.
이제까지와 달리, 소설뿐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들 - 가족, 존 가드너와 고든 리시, 그리고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그가 말하는 에세이, 그리고 자신이 썼던 것들에 대한 서평들, 초기 단편들도 수록되어 있다. 무려 15년 전 서문까지. 그에게 한발 더 다가선 듯한 느낌도 기쁘지만, 이제서야 나는 이렇게밖에, 생각되는 건 못난 독자의 욕심일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단행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최근 출판된 <풋내기들Beginners>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가볼까 한다. <풋내기들>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출판되었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의 원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두가지 판본 사이에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취향은 읽는 누군가의 몫일 터. 그리고 전기라 할 수 있는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은 두께에 일단 진정하고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당신에게 다른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