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영국은 외로움부 장관을 세계 최초로 임명했고, 영국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21세기를 외로운 세기라 명명했다.
외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외롭다’는 ‘외’에 ‘–롭다’라는 접미사가 합쳐진 단어인데, 외는 주로 하나를 뜻한다. 둘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외로움을 뜻하는 lonely는 셰익스피어가 1605년에서 1608년경에 쓴 <코리올레이너스>라는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단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그러한 감정을 몰랐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물론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존재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감정을 뜻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는 정치철학사 분야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주목했다. 그의 <전체주의의 기원> 속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고독과는 다른 ‘자아 상실’의 감정은 이제 개개인이 느끼는 낱개의 감정들이 아니라 시대를 위협하는 전체적인 감정이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이러한 외로움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외로움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객관적인 지표들과 쉬운 언어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세심한 노력은 내게 분명 사려 깊고 친절했다.
우리는 2015년 포니 사피엔스에서 론리 사피엔스가 되어가고 있다. 네가 곁에 있지 않아도 마치 네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디지털 기술들이 발전하는 만큼 우리는 진짜 인간의 존재를 곁에 둘 필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외로움은 그렇게 홀로 된 자들의 곁에 쉽게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이미지와 소리는 데이터로 전환 가능하다. 우리는 사진을 보거나 전화를 하면서, 마치 그것이 진짜인양 대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이미 크게 중요하지 않다. 원본은 이미 수없이 복제되고, 복제는 원본이 된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누구도 그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요새 등장하는 딥페이크의 등장은 그 틈을 파고든 현실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인류의 결속은 이제 대기업의 상품까지로도 고려되고 있다는 저자의 문장은 너무도 씁쓸하다.
또한, 외로움의 원인 중 하나인 디지털 기술은 한번 만들어진 서비스는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가능하다. 나는 카페 안에서 바깥의 사람들을 구경할 때가 있는데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을 보며 길을 걸어간다. 현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이미 휴대폰 속 세계에 있다. 그렇게 외롭지 않을 수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영상들은 인터넷만 된다면 무제한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영상조차 숏츠나 틱톡 등 짧게 파편화된 영상물로 변화되었다. 나는 사실 세계의 미래 따윈 알 수 없지만 이제 어디까지 가는 걸까 생각할 때가 있다. 현재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꾀하는 자들은 인류나 지구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하기는 한 걸까도.
저자가 말하는 다른 하나의 원인은 능력주의다. 한때 정의의 열풍을 불러 왔던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저서 속에서 능력주의의 허상을 파헤친 바 있다. 개개인의 능력 대로 평가하자는 능력주의라는 단어의 표면 뒤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누가 그러지 않았나. 노력도 재능이라고. 이 재능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끝도 없다. 우리는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러나 저러나 산다. 그렇게 외로움은 대물림된 채로 유유히 우리 곁에 자리 잡는다.
이러한 론리 시대를 바꾸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들은 마지막 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강박적인 자기 책임 윤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에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이 말은 모든 어려움을 나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의미다.
저자의 제안 중 마지막으로는 디지털 시민권이 있다. 현재 시대의 필요한 권리이자 교육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디지털을 빼고는 살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기술에 대해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정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역량, 그에 상응하는 규범과 태도에 대한 교육은 국가가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p.336) 디지털 난민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동안 외로웠고, 그 외로움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섰고, 그 끝에 나의 외로움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지지 않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