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지호에게 회사 얘길 잘 안 하게 됐다. 내가 조직생활의 고충을 토로할 때마다 ‘힘들면 그만두라‘는 말을 너무 쉽게 했기 때문이다. 아마 본인부터가 잘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부모 돈으로 이층짜리 커피숍을 낸 사람이라 그런지 몰랐다. 지호에게는 뭐랄까.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었다.
남으면 버리고, 없으면 사고, 늦으면 택시 타는 식으로 오래 살아온 사람이 가진 무심한 순진함이. 학부 땐 그게 귀엽고 가끔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당당해 보여 끌렸는데, 결혼 후 같이 살다보니결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번 여행 계획을세우며 내가 예산을 맞추려 전전긍긍할 때도 지호는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년 10월 19일 오전 12:20-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