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계속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살아왔던 지난 세월의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무작정 집을 떠나 처음 도시에 왔던 일, 중국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팔뚝에 화상을 입었던 일, 그를 버리고간 사람들과 그가 버린 사람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일은 집세를 내지 못하고 쫓겨나 몇 년간 묵었던 여인숙에서 그곳을 청소하던 여자를 만나 함께 살았던 것이다. 여자는 오래오래 가난했고, 늘 남은 밥을 얻어먹어 갓 지은 밥을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밥솥을 샀다. 김이 나는 하얀 밥을 보고 여자가 울었다. 노인은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장롱다리 밑에 접어 괴어둔 종이를 꺼냈다. 내년에 심을 꽃목록 맨 아래에 여자가 좋아했던 금잔화를 적었고, 다시 접어 원래 자리에 두었다.- 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