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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읽는 내내 과연 이것이 내가 지나쳐 온 고등학교 3학년이란 지위의 지적주순인지에 감탄적 시선을 가졌다. 다소 무리가 따르는 비약과 엉성함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론 도출에 이르기까지의 논리정연함은 나도 저런 위치의 시기에 있었기에 감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 물론 우리와의 교육환경자체가 다름으로 인해 오는 차이이기에 존경으로까지의 감정 발전은 없었다.

솔직히 지금의 나조차 이런 류의 철학적 질문을 받았을 때 짤막하게 이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도출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신이 서질 않는다. 아니, 자신이 없다. 철학에서 사회과학,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어느정도의 기본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저런 체계적인 서술이 가능하기에 나 자신의 교양수준을 잠시 되돌아보기도 했다.

다만, 여기에 실린 답변들은 다분히 작위적으로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펼쳐놓는 논술이기에 여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답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긴 하다. 하지만 논술의 강점을 나타내 주는 또 다른 특징인 독창성은 왠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답변들이 너무 정해져 있는 틀을 따르는 듯 하다. 주어진 질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한다. 좋다. 또는 나쁘다 등등으로. 그 뒤로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다른 대상을 찾는다. 소크라테스에서 헤겔로 헤겔에서 루소로 루소에서 사르트르로. 거의 대부분의 답변들이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전개해 나가기보다는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렇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저렇게 말했다. 그래서 옳다는 식으로 과거의 굴레에서만 맴도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과거의 둘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채 결론을 내리고 만다. 물론 그런 생각들을 조리있게 맞추고 중간중간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과거의 학문들의 틀에서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 우리나라의 주입식과는 다르지만 또 다른 프랑스식 주입식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교양적일지는 모르지만 논술로서의 방향으로는 아니라 본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의 범위 내에서 말하겠지만 이런 글들에서는 오히려 그들보다 아는 만큼이 더 좁은 사람들에게서 나올법한 독창성은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세계의 교양으로서, 즉 철학이란 학문을 위해서는 대단한 지식의 깊이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읽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질문의 궁극적 답으로서는 추천작 모음보다는 다분히 현학적 모음이 어울린다 생각이 든다. 의견전개는 자신만이 아닌 모든 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체계적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이 다분히 복잡하고 어려운 낱말선택이 취해졌을 때, 그것은 쉬운 의견개진이라기보다는 지식기반을 갖추기 않고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또 다른 지식의 계층을 산출해 내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각 질문들에 나와 있는 답변들의 현학적 내용이라든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전개자체에 감탄만 하며 책을 덮기보다는 나 자신이 그런 질문에 과연 대답할 수 있는가, 대답을 하기 위한 지적 수준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하는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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