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수 양 서 재


호주의 앤잭데이는 우리나라 현충일에 맞먹는 국경일이다. 우리는 이런 행사가 관주도로 지나치게 엄숙하게 이루어지고 시민 차원에선 다소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호주에선 무슨 마을 축제처럼 흥겨운 분위기다. 이날 만큼은 동네 필부로 살아가던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옷장 깊은 곳에 모셔둔 군복을 꺼내 입고 교통이 통제된 시드니 대로를 당당하게 활보한다. 노병의 가슴팍에 매달린 수많은 훈장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복잡다단한 이념 갈등의 역사도, 군부독재의 트라우마도, 분단국가가 부득이 안고 있는 만성적 고충 같은 것도 없는 나라의 단순명랑 쾌활한 현충일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사실 주말마다 확성기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드는 지긋지긋한 태극기 노인네들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만큼은 이 못지않을 텐데, 또 그중엔 분명히 나라를 위해 목숨 내걸고 산전수전 겪은 이들도 상당할 텐데...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헌신한 사회구성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예우를 갖추어 한마음으로 순수하게 축제를 즐기기에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저마다의 정치적 시각에 따라 날을 세우고 시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복잡한 문제와 갈등이, 또 해결이 난망한 민족적 과제가 너무나 많은 듯... 광화문 거리에 펄럭이는 태극기조차도 이념적 색채를 띠고 있으니. 호주의 앤잭데이 행사를 한국인의 눈으로 구경하고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