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 하이데거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의 장점을 밝히겠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뤼디거 자프란스키가 쓴 하이데거 평전이 나오지
않았었다. 따라서 인간 하이데거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책은 박찬국이 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나
지금 해설하고 있는 이 책 정도이다. 그 중에서는 이 책은 좀 더 하이데거의 인생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는 하이데거 사상에 대해서는 너무 함축적으로 적어놓아 처음 하이데거를
접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버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책의 분량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2.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
20세기에
후세에 압도적으로 영향을 많이 남긴 (이제는 너무나 낡은 용어인)대륙철학자는
단연컨대 마르틴 하이데거이다. 그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 철학자들만 해도 장 폴 샤르트르, 한나 아렌트, 칼 야스퍼스와 같은 실존 철학자부터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엠마누엘 레비나스, 알랭 바디우, 자크 라캉, 슬라보예 지젝 등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리처드 로티 등 일부 분석 철학 계열에서도 하이데거를 주목한다. 이제 그는 어디에서나 재해석되는 상당히 중요한 철학자로 인식된다.
3. 나치옹호주의자 하이데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철학 외적인 생활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이러한 이야기는 나치 독일 시대에 대학
총장을 맡을 때부터, 자신의 유태인 스승 후설을 교수직에서 쫓아낼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소강 상태를 보였던 이 논쟁거리는 최근에 발견된 하이데거의 비밀 일기장인 ‘검은 노트’에서 반유태주의적 태도가 나와 다시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관계에 대해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런 분야는 내가 하이데거 전문가도 아닐 뿐더러 어느 한 입장을
취해 딱 잘라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나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다. 다만 나 역시 그가 후기 사상에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독단적인 면모를 조금 느꼈다. 이러한 예화 중 하나는 하이데거가 존재자가 말을 걸어올 때 사용하는 언어는 오직 독일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4. 20세기 서구 사회의 유태인에 대한 일반적이라고 간주되는 시선
또한 당시 유태인들은 서구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기에 상업이나
금융업 같은 천대받던 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유대인은 계산에 밝고 욕심이
많은 이미지였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나오는 유명한 유태인 등장인물 ‘샤일록’의 성격은 유럽인들의 그런 편견을 엿볼 수 있다. 하이데거 후기 철학의
내용 상 계산적인 사고를 한다고 믿어지는 유태인의 행동은 곧 존재자를 은폐하고 무시하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이 존재자로서 유태인을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5. 풍요로운
삶을 살아내는 것에 대한 하나의 예시
정리하자면 하이데거는 유래 없는 독특한 철학으로 많은 이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나치를 옹호하는 그의 태도가 따라서 하이데거 철학 자체의 문제점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하이데거의 생각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마땅하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비판적 견지를 유지할 때, 하이데거의 철학은 상상과 반성이 어느 정도 훌륭한 예시라는 답을 남기고 싶다.
나는 리뷰나 페이퍼에 대한 관점을 개설하는 글에서 풍요로운 삶의 조건으로 상상과 반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이데거는 사물을 숨겨진 존재자에 대해 상상하였다. 이 짧은 문장
안에 담겨 있는 그의 작은 발걸음이 80권에 육박하는 하이데거 전체 사유의 출발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후기 철학에서 과학 기술의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이 어떤 반성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잘 풀어놓았다. 이런 시선에서 그는 내가 중요시 여기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성취했다고 바라본다. 비록 앞에서 찾아본 그의 무비판적 시선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점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