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선생이 책임 편집을 맡아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연구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온
[반헌법행위자열전]이 드디어 출간을 앞두고 있네요. 전체 12권으로 기획되었는데 이번에 1차분 4권이
먼저 출간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앞으로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새로운 교과서 중 한 권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해봅니다.
이번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이 책의 출간이 의미하는 바를 따져본 글을 하나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과 교열이 끝난 것이 아닌 만큼 혹시 인용과 토론을 원하는 분들은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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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헌법행위자열전』의 출간이 의미하는 것
반헌법행위자열전의 배경과 내용
오랫동안 기다렸던 『반헌법행위자열전』(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엮음, 사회평론아카데미 2026, 이하 『열전』으로 약칭)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열전』은 2015년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출범한 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가 책임편집을 맡아 10여명의 전문 연구위원들이 말 그대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펴낸 중요한 성과다. 그 과정을 지난 몇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기만 한 나로서도 적지 않은 감회를 느끼게 되는데, 『열전』의 집필진과 이 기획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분들이 얼마나 큰 감회와 보람을 느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번에 출간된 것은 전체 12권 중 1차분에 해당하는 4권으로, 전12권이 완간되기까지는 앞으로 2~3년의 고된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1차분의 출간 자체만도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열전』은 책 제목이 말해주듯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래 자행된 수많은 국가폭력 및 민주화운동 탄압행위들을 ‘반헌법’이라는 기준으로 정리하려는 목적하에 기획된 책이다. 이 책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속집권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화의 과정에 진입했다고 평가받던 와중에 두번 연속 보수정부가 집권함으로써 오히려 민주화가 퇴행을 겪게 된 일을 배경으로 한다. 책임편집자인 한홍구가 「해제」에서 강조하듯이, 특히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은 ‘유신의 귀환’에 대한 고지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1987년 이래 30여년 동안 전개된 민주화 이행과정에 대한 전면적 부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진영의 지식인들은 연이은 보수정부의 집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과거사 청산작업의 실패가 주요원인 중 하나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고, 특히 국가폭력의 주요 당사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정치적 반동과 역사적 퇴행을 불러오게 된 뼈아픈 실책이었다는 평가를 내놓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독재인명사전이나 반민주인명사전 편찬계획 등이 논의되었지만, 이는 민간 차원에서 시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기에 그 대안으로 국가폭력의 주요 행위자들에 대한 열전 형식의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열전편찬위원회가 우리에게 익숙한 ‘독재’나 ‘반민주’ 같은 개념이 아니라 ‘반헌법’이라는 기준을 바탕으로 『열전』을 기획했다는 점이다. 책의 서두에 있는 몇편의 「발간사」와 한홍구의 「해제」가 밝히듯이 그 이유는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의 경우 경계의 자의성이나 정치적 당파성의 시비가 붙을 우려가 있어, 좀더 광범위하게 상식적 시민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열전』의 목표를 달성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이 존중하고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규범인 헌법이 국가폭력 및 반민주주의적‧반인권적 행위를 평가하기 위한 궁극적인 기준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더욱이 『열전』은 오늘날의 헌법이 아닌 반헌법적 행위자들 당대의 헌법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필자들이 논란의 시비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말해준다.
『열전』은 1948년부터 노태우정부에 이르기까지 40여년간 반헌법적 행위를 자행한 312명의 공직자들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원고지 4만 2천매, 12권 분량에 이르는 대기획이다. 이번에 출간된 4권의 책은 총론과 5명의 대통령(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열전으로 이루어진 1권 ‘대통령’편과 2권 ‘법원’, 3권 ‘검찰 1’, 4권 ‘검찰 2’이며, 앞으로 국회의원, 정치인, 관료, 군인, 중앙정보부‧안기부 요원, 경찰 등에 대한 8권의 열전이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헌정을 파괴하는 헌정의 수호자라는 역설
『열전』 1권의 대상을 이루는바 무엇보다 놀라게 되는 것은 이승만에서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책임제를 채택한 시기의 대통령 전원(5명)이 반헌법행위자로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생각할수록 충격적이다. 이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부터 40여년 동안,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헌법을 준수하고 각종 헌법 침해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대통령 자신이 적극적으로 헌법을 침해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저질렀으며, 앞장서서 민주공화정의 근간을 무너뜨렸음을 의미한다. ‘헌정을 파괴하는 헌정의 수호자’라는 이러한 역설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측면을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더욱이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노태우 이후의 시기에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이 감옥에 갔으며, 특히 윤석열의 내란행위가 이러한 역설의 ‘시대착오적 재연’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늘날까지도 그 비극은 종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섬뜩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대통령들 스스로 반헌법행위자들이었는데, 그가 지휘하는 군‧정보기관‧검찰‧경찰 등과 같은 공안기구의 공직자들 및 다른 관료들이 헌법을 준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터이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인권의 최후보루라고 불리는 법관들, 그중에서도 대법원장과 대법관같이 대한민국 법원의 최고위직 역시 반헌법행위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통속적인 격언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 말해주듯,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인권과 정의의 수호자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12‧3 친위쿠데타를 겪으면서는 이 사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2‧3 친위쿠데타 정국에서 우리가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이번 쿠데타 내지 내란행위가 일회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윤석열과 김용현 등이 주도한 군사쿠데타로 전개되었지만,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 및 탄핵소추 이후에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덕수와 부총리였던 최상목 등을 필두로 한 ‘행정부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그들은 윤석열의 쿠데타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만류하지도 않았으며, 탄핵소추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지연시킴으로써 탄핵 절차의 진행을 방해하고 그 결과 내란행위를 연장하려고 했다. 또한 대법원장을 비롯한 일부 법관들은 비정상적인 재판 절차를 통해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판결을 서둘러 집행함으로써 결국 그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려고 했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아울러 내란 재판을 담당하는 한 판사는 내란의 주모자인 윤석열의 구속기간을 통상적인 ‘날’로 계산하지 않고 ‘시간’ 단위로 계산하여 그를 석방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는 곧 행정부의 쿠데타에 이은 ‘사법부의 쿠데타’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았다. 이번 쿠데타 정국에서 우리가 목격한 행정부와 사법부 고위 엘리트들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위는, 『열전』의 대상이 된 과거의 반헌법행위자들의 유산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역으로 12‧3 쿠데타는 고위 공직자들의 반헌법적인 행위가 단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도 대통령이나 행정부 및 사법부, 군부와 공안기구 등 엘리트 공직자들에 의해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헌정의 기원에 존재하는 극우 파시즘
그렇다면 『열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한가지 핵심적인 교훈은, 우리나라 헌정이 기원에서부터 극우 과두제세력의 지배 아래 놓여왔다는 점, 따라서 파시즘은 비정상적이거나 예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우리 헌정의 구성적인 요소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내가 조금 앞에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를 ‘시대착오적 재연’이라고 표현하면서 작은따옴표를 사용한 것은,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즐겨 사용한 것처럼 따옴표 안의 문구에 대한 일정한 유보적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파시즘이 기원부터 우리 헌정의 구성적 요소를 이루어왔다는 나의 테제가 진실이라면, 사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전적으로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헌법과 헌정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이 일반적으로 말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조직 구성 및 정치 활동 원칙을 제시하고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규정하는 최고 규범을 의미한다면, 헌정이란 이러한 헌법에 입각하여 형성되고 유지되는 질서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이 과연 좋은 것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좋은 헌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좋은 헌정은 부재하거나 부실한 헌정만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런 일반적인 이해만으로도 우리는 해방 이후 80년에 이르는 대한민국 헌정이 반드시 헌법 원리에 충실하게 형성되고 유지된 것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으며, 특히 열전은 사실 한국의 헌정사라는 것이 헌법과 헌정이 따로 노는 역사였다는 점, 심지어 헌정을 파괴하는 헌정의 수호자들로 점철된 역사였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역설은 해방 정국의 국가폭력에 기원을 둔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극우 파시즘은 12‧3 친위쿠데타 및 서부지법 폭동, 태극기부대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1945년 이후 80년간의 한국헌정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를 통해 입증될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무엇보다도 제주 4‧3사건과 10‧19 여순사건, 그리고 한국전쟁 전후에 자행된 숱한 민간인학살에서 드러나는 사실이다. 8‧15 해방정국에서 강렬하게 표출된 바 있는,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아래로부터의 열망은 한반도에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세력에 맞서 냉전 반공진영을 구축하려는 미군정의 새로운 식민통치로 인해 좌절되었으며, 그것에 편승하여 정권을 장악하려는 식민‧냉전 극우세력의 극단적 폭력 아래 수많은 민간인의 죽음을 낳고 말았다. 6‧25 이후 고착된 분단체제는, 국가 형성기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정당한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정당화함으로써 극우 과두제세력이 한국의 민주공화국 헌정질서의 정상적인 구성요소로 편성되게 했다.
이렇게 보면 탄핵정국에서 이루어진 극우 대중운동에 관한 여러 연구(주로 정치사회학적 연구)가 12‧3 친위쿠데타를 한국현대사와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지 못한 채 새로운 정치적 현상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해방 80년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를 이해하려는 좀더 통시적인 연구에서도 한국의 민주공화정이 처음부터 파시즘적이거나 극우 과두제적인 속성을 내장하고 있었다는 점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는 것 역시 아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주공화정이 기원에서부터 극우 파시즘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경우, 오늘날 극우 파시즘에 대응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작업 자체가 제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것은 극우 파시즘에 맞서 정상적인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것 이상의 목표를 시야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공화정이 처음부터 파시즘을 내장하고 있었다면, 정상적인 헌정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것은 파시즘과 타협하고 파시즘을 게임의 정상적인 요소로 인정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따라서 냉전 극우세력은 이제는 지나간 한국현대사의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놀랍게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국의 ‘물질적 헌법’(material constitution)의 핵심요소라는 점을 유념해야 하며, 12‧3 쿠데타에 대한 고찰과 평가, 대응은 이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물질적 헌법이라는 개념은 이탈리아 법학자 코스딴띠노 모르따띠(Costantino Mortati)가 1930년대에 처음 제안한 것으로, 최근 서구 및 중남미 진보 법학계와 정치학계에서 헌법을 그 역사적‧사회적인 관계와 변증법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들은 헌법 개념 자체를 현실과 법의 상호 연관성을 포괄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헌법은 법조문 텍스트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그 텍스트를 가능하게 하고 헌법의 기능과 재생산 역시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적 세력과 조건들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이 된다. 물질적 헌법 또는 물질적 헌정에 관한 탁월한 개괄로는 Marco Goldoni and Michael A. Wilkinson, “The Material Constitution,” The Modern Law Review vol. 81, no. 4, 2018; 마르꼬 골도니‧마이클 A. 윌킨슨 『물질적 헌정』, 황재민 옮김, 현대정치철학연구회 2026(비매품) 참조. 물질적 헌정 개념에 입각하여 개헌 문제를 사고하는 시도로는, 졸고 「해방 80년,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하여: 최대주의 개헌을 시도하자」, 계간 『파란』 2025년 봄호 참조.]
이는 박근혜 탄핵정국과 윤석열 탄핵정국에서 나타난 집권여당의 대응에서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도 유익하다. 2017년에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과반 세력이 박근혜와 단절을 시도한 바 있고, 또 대부분은 박근혜의 잘못에 대해 사죄한 바 있다. 하지만 2025년 탄핵정국 내내 국민의힘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 아래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음이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윤석열을 방어하고 옹호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윤석열이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세력과 전면적으로 단절하지 못한 채 극우적인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공화국 헌정의 핵심세력 중 하나(국민의힘이 대표하는 ‘보수우익’)가 공화정의 질서 자체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 했던 윤석열 일당과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적극 옹호하고 방어하려 했다는 점, 따라서 공화정의 파괴에 동조하고 협력했다는 점은 한국 공화정 내에 극우 과두제가 내재해 있다는 사실, 그것도 그 핵심요소 중 하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리고 『열전』은 이것이 우연이 아니며 한국 현대사와 헌정사의 정상적인 작동방식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열전편찬위원회 이만열 공동대표가 「발간사」에서 『열전』을 “백신”으로 비유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백신으로서의 『열전』이 목표로 삼는 것은 “권위주의라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신체의 면역체계를 파괴하는지, 그 병리적 과정을 해부학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미래 세대가 독재의 초기 증상을 식별하고 저항할 수 있는 항체를 형성하도록 돕는”(『열전 1』 8~9면) 일이라고 규정한다. 필자가 보기에 『열전』은 마땅히 이러한 과업을 수행해야 하며, 또 충분히 그럴 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많은 독자들이 『열전』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수많은 인물들, 실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권력과 혜택을 누린 이들이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국가폭력을 비롯한 반헌법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낱낱이 공부하게 될 것이며, 이는 적어도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제2, 제3의 윤석열이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예방교육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증언의 연대로서 『열전』
하지만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열전』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또다른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간행사」와 「해제」에서 드러나는 열전편찬위원회와 집필진의 또다른 저술 목표는 민주화 이후에도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반헌법행위자들, 국가폭력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일종의 ‘역사의 법정’을 개정하여 역사의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열전』이 이러한 역사의 심판대를 세우는 작업을 단지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의 관점만이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관점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법정을 개시하여 국가폭력 가해자들 및 반헌법행위자들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것은 단지 그들의 잘못을 알리고 그들에게 준엄한 역사적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국가폭력 및 반헌법행위로 인해 파괴되고 훼손된 헌법의 가치, 민주주의적 헌정의 기본원리를 바로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기 위해서다. 더욱이 편찬위원회와 집필진은 그것을 피해자의 이름으로, ‘고통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국가폭력과 반헌법행위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사고할 때에만 단지 ‘정상적인 헌정의 회복’을 목표로 삼는 것을 넘어서 민주적 헌정의 원리 자체를 쇄신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내가 최근에 상호증언의 연대(solidarity of mutual testimony)라는 개념 아래 한국의 민주주의 및 민주주의 일반의 토대를 새롭게 사고하려고 시도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다.[Tae-Won Jin, “We Are Each Other’s Witnesses: Democracy of Testimony After the December 3 Self-Coup,” 『비교문화연구』 특별호,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25.] 내가 말하는 상호증언의 연대는 이중의 준거에 입각하여 고안된 개념이다. 첫째, 그것은 프랑스 철학자 까뜨린 말라부(Catherine Malabou)가 아나키즘에 관한 정치철학 저서에서 아나키즘을 ‘증언’에 입각하여 재고하려는 시도에서 영감을 얻었다.[Catherine Malabou, Au voleur!: anarchisme et philosophie, PUF 2022.] 아나키즘은 국가의 통치권력(arche)에 입각한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벗어나 지배 없는(an-arche) 자율과 공생의 관계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자 운동이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부도 이를 수용해 제국주의라는 거대권력에 맞서고자 했다. 그러나 말라부에 따르면 오랫동안 그리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아나키스트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아나키즘을 믿지 않으며” “누구도 사람들이 통치/정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말라부는 “모든 아나키스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인용자) 증인들”[같은 책 268~69면. 강조는 원문.]이라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아나키즘이 존재하고 아나키스트적인 봉기와 실천이 수행되어왔으며, 아나키스트적인 공생과 돌봄의 공동체가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아나키스트들을 제외한 이들은 아나키즘을 사유하거나 실천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나키즘은 오직 아나키스트들 사이의 상호증언의 연대로만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말라부의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구체적으로 깨닫게 된 것은 2024년 탄핵정국에서 전개된 일련의 시위와 집회, 특히 ‘남태령 대첩’으로 알려진 농민들과 서울시민들 사이의 연대투쟁을 목격하면서였다. 그동안 서로 외롭게 싸워왔던 소수자들, 사실은 우리 사회 시민들 대다수와 다르지 않은 을(乙)들은, 타인들(농민들)이 직면한 문제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발견했고, 마치 자기 문제인 것처럼 타인들의 문제해결을 위한 싸움에 동참함으로써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남태령 대첩은 을들의 연대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진전에 기여하는지 보여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후 내가 더 깨닫게 된 것은 이러한 을들의 상호연대, 을들의 상호증언의 연대가 남태령 대첩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한국현대사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 바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엄혹한 국가폭력과 반헌법적 탄압 아래에서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진전시켜온 핵심동력이라는 점이다. 얼핏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남태령에서의 연대투쟁이 말 그대로 ‘대첩’으로 불릴 만하며 중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과 차별, 배제에 시달리는 소수자들 사이 저항의 연대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핵심동력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스스로 아나키즘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사회에서 가장 빈곤하고 모욕당하고 배제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전개하는 투쟁들, 예컨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나 성소수자들의 투쟁, 재난참사를 경험한 유가족들과 이주노동자와 농민들의 투쟁, 밀양 탈송전탑‧탈핵 투쟁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더 근본적으로 본다면 ‘빨갱이’로 내몰리면서 오랫동안 숨죽이며 살아온 국가폭력 피해자들 및 그 (유)가족들의 투쟁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는 투쟁, 상호증언의 연대투쟁이 아니던가?
또한 1980년 5‧18 당시 공수부대로 포위된 도시 안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도 외롭게 자신들의 투쟁을 전개하던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의 투쟁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해 맺었던 상호증언의 연대가 바로 열흘 동안의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가? 더욱이 광주나 전남 출신이 아니거나 그 지역과 특별한 연고로 연결되지 않았으면서도, 그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세대에 속한 것도 아니면서도, 그 상호증언의 연대에 스스로 참여하여 5‧18의 이름으로 민주화투쟁을 전개했던 전국의 수많은 증인들이야말로 5‧18운동을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었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5‧18을 5‧18로 만든 것은 상호증언의 연대에 입각한 “공격적인 비폭력 투쟁”[주디스 버틀러 『비폭력의 힘』,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21.]이었다고 말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약 오늘날 5‧18이 더이상 한국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원동력으로서 작동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5‧18이 더이상 이러한 상호증언의 연대의 정신을 망각하거나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5·18이 국가의 공식적인 기념 대상으로 지정된 뒤 마치 그같이 불화하는 민주화운동은 모두 종결된 듯 이해되는 데에서 나아가 폭력에 맞서는 돌봄의 연대를 재구성해야 함을 짚은 졸고 「5·18과 불화하기」, 『민주주의와 인권』 23권 2호, 2023 참조.]
그렇다면 아마도 이 『열전』의 편찬위원회와 집필진 및 이 작업의 진행과 출간을 가능하게 한 후원자들, 그리고 이제 이 『열전』을 읽게 될 독자들 역시 반헌법행위에 맞서 일종의 상호증언의 연대를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외롭게 싸워온 이들을 증언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고 또 후원했으며, 이제 이 책의 독자들은 또 나름대로 『열전』의 페이지 페이지를 읽으면서 분노하고 슬퍼하고 의지를 다지며 상호증언의 연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무덤도 없이 제대로 추모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거대한 애도의 작업이면서 그 작업에 기반을 두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쇄신하려는 미래 연대의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