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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어느 팔레스타인 학자의 필사적 투쟁 - 경향신문




얼마 전에 고병권 선생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팔레스타인 학살에 침묵하는 국내 학계에 관해 


과연 한국의 대학들이 살아 있기는 한 것이냐 하고 반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동안 사석에서 몇 차례 팔레스타인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관해 


국내의 대학들, 특히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방관과 침묵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온 적이 있기 때문에 


고병권 선생의 칼럼이 더 반가웠습니다.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입니다. 한국 현대사는 해방과 6.25 전쟁 전후에 자행된 거대한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의 바탕에서 전개되었고,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80년 5.18에 벌어진 


광주 시민들에 대한 국가폭력 및 학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와 민주화운동은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에 대한 비판과 피해자들의 회복 및 재발 방지의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 인문사회과학, 특히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은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및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과 비판적 분석,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모색 작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죠. 



그럼에도 마치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이렇게 조직적이고 잔혹하게 전개되는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은


마치 우리의 문제가 아니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마치 한국에서 일어난 국가폭력만이 중요한 


국가폭력이고 한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만이 의미 있는 학살이라는 듯이, 국내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이렇게 답변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로서도 매우 가슴 아프고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만한 것이 없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이 예전에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제시한 


흥미로운 구별을 상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는 두 가지로 이데올로기를 구별합니다. 


(1) 의식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개념인데, 이것이 우리가 대개 이데올로기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이죠. 


요컨대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이고, 가상이고 기만이자 조작이라는 입장이죠. 그런데 지젝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런 생각은 독일 철학자인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제시한 '냉소적 이성'의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기 어렵다고 


말하죠. 냉소적 이성이란, 예컨대 신자유주의에 관해, '그래 신자유주의자들 나쁜 놈들이지. 경쟁을 부추기고 


복지 체계 무너뜨리고 비정규직 확산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하고.' 이렇게 


말하면서, 비정규직 동료를 희생시키고 외면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가리키죠. 냉소적 이성은 허위의식이나 


가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니죠.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잘 의식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들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냐? 지젝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2) 따라서 지젝은 의식에 기반을 둔 이데올로기 개념 대신에 행위에 기반을 둔 이데올로기 개념이 필요하다고 


말하죠. 이 두 번째 이데올로기 개념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의식 차원에서 비판하고 그것을 


거론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와 요구에 맞춰서 열심히 행동하는 사람들이죠. 누구보다 열심히


경쟁하고, 누구보다 업적을 많이 내기 위해, 영어권 우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탁월한 신자유주의자일 수 있는 것이죠.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그것과 거리를 두지만 행위 차원에서는 일심히 신자유주의에 


따라 행위하고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실제로는 진정으로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것이 지


젝의 논지입니다. 저는 이것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국가폭력이나 민간인 학살의 문제에 똑같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그 학살과 폭력에 혀를 차고 이스라엘을 비판하지만, 


행위 차원에서는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것은 사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학살을 폭력과 학살이 아닌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난 국가폭력과 


학살만이 의미가 있다고 긍정하는 것이죠.



우리가 진보적인 시민이자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학살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자기기만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폭력과 


학살을 방관하고 지지하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이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마침 다음과 같은 공동 연대의 움직임이 있으니, 관심 있는 시민들 및 연구자들, 단체들은 적극적인 참여를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참여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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