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잡동사니 연대기
문득 생각난 건데 황모 출판사에서 나온다던 러브크래프트 선집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읽는 책의 장르에 대해 편식이 심한 나로선 스타일이 어쩌구 저쩌구 할 아무런 뭐도 없지만 책을 읽을 때 아마 이런 걸꺼야.. 하는 기대 심리라고 할 그런 게 은연 중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만일 아가사 크리스티의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이었으면, 저 조그만 마을에 새로 이사온 찰스 워드라는 청년을 두고 뒷담화 좋아하는 우리 아줌마들과 마플 할머니가 애인을 죽이고 도망왔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은 여자땜에 인생 망친 유약한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내고, 동정심에 정원사를 새로 구해준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은근슬쩍 기다리게 된다던가... ;;
혹 코넌 도일의 '이하동문' 이었으면, 아름다운 아가씨가 소식이 끊긴 약혼자 찰스 워드에 대해 문의하고, 이에 의협심이 발동한 왓슨을 홈즈가 툴툴거리며 따라 가서 결국 유산과 상속과 질병으로 뒤엉킨 숨겨둔 비밀을 파헤쳐 결국 약혼자를 구해낼 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러브크래프트의 '이하동문' 이라면 일단 마음 단단히 먹고, 촉수 괴물(..엉?)과 악한 주술사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조심 조심하면서, 다른 글들과는 달리 한 줄 한 줄 나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엄청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미리 스스로에게 경고하게 된다.
그러니 고미술품과 역사에 비범한 관심을 보이는 찰스 워드라는 청년과, 그 청년의 선조 중 한 사람으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노력이 아낌없이 가해졌던  조지프 커웬이라는 정체모를 인물이 등장하자마자, '헛...이런 이런...이 쳥년..불쌍하게 됐군..' 하고 쯧쯧 혀를 차는 것은 당연함이 되어 버린다. 더불어 이 추악한 영혼이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지 잔뜩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고.

'비밀' 은 시각적인 무서움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는다. 글들도 무슨 보고서처럼 이래저래 해서 이렇게 됐는데, 이래저래 해서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적혀 있어서, 스티븐 킹의 소설처럼 '오마나' 하며 잠시 책장을 덮는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은근히 오싹하다.
묘지의 이상한 흙 냄새가 집 안을 가득 메우고, 개들이 미친 듯 짖어대고, 초상화의 눈동자가 기다렸다는 듯 생생하게 희번덕거리고, 결국 요그소도스까지 나오면 이제 세상의 종말이구나..하는 생각이 그냥 들고마는 거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에 와서야 한숨을 쉬면서 당분간은 안전해, 당분간은... 하게 된다.

이 안전함은 다음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을 때까지는 유효하다. 어쨌든.
스멀거리는 광기와 영혼을 지배하는 사악한 마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다른 주문을 기다리며, 혹은 대체 주문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다른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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