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등산복이 워낙 비싸, 5만원 정도로는 얇은 여름티셔츠나 좋은 장갑 같은 소품 외에는 살 수 있는 게 많지 않을정도이다. 예전에 지리산 뱀사골대피소에서 밖에 앉아있는 '후줄근한' 아저씨들을 보며 친구가 너 저 사람들 몸에 걸친 게 얼마정도쯤 될것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내가 예상햇던 금액과 너무나 차이가 나서 깜놀했던기억이 있다.
야생에서 내 몸을 지켜주는 것이니 기능성도 고려하고 내구성도 고려해야 하는게 맞다. 가격이 올라가는 것도 기꺼이 부담할 수 있다.
그런데사실 이렇게 고가를 지불하는 것이 산에서 안전하고 좀더 쾌적하게 지내기 위한 거라면
사실 그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있다. 내가 산을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산에서 적절하게 스스로를 지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티셔츠 한벌 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어마어마한 산에 대한 준비와 지식을 우리에게 선물해준다. 꼭 책으로 굉장히 높고 아름다운 산을 오르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을 펼치면 "당신이 등반을 하기전에 갖추어야 할 최고의 안전장비다'라는 이야기가
써져 있다. 물론 책이 두껍고, 고난도 등반이나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당일산행 정도로 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전문적인' 책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근데 아무 생각없이 레크레이션 같은 기분으로 산을 오르는 것과, 산에 대한 올바른 자세와, 기본 준비사항을 숙지하고 조금 난이도 있는 위기 대쳐법을 알고 있다면,단순한 '등산객'이 아니라 누구라도 당당한 '등산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앞사람 꽁무니만 쫒는, 그런 산행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어산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런 산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전은 결국 내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냥 기술만 설명된 게 아니고, 내용 앞뒤로 산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 또 산을 대하는 깊은 태도, 자연에 대한 존중 같은 게 깊게 배어 있다. 그저 산을 걷는 것조차 산에게는 인간의 흔적을 남기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니 최소한으로 인간의 흔적을 남기라는 메세지는 정말 깊이 되새겨볼만하다.
이 책의 번역자인 정광식 씨가 얼마전 불의의 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마지막 글이나 다름없는 '옮긴이의 말'에는 "나는 자연의 수호자다. 나를 전사를 만든 것은 이 책이다. 등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보여주기 전에, 먼저 자연의 수호자로서 등산가들의 역할과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고있다.자연은 조상에에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후손에게 서 잠시 빌려쓴 후에 온전히 돌려주어야 하는 후손들의 것이다."라는 글이 있다. 북한산을 가고 도봉산을 갈 때 나는 얼마나 산을 거대한 자연으로 존중해 본 적 있던가. 이게 내가 죽고도 한참을 우리 후손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사랑방이 되어줄 공간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던가.
어차피 이 책은 한달음에 읽을 책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내가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가듯이, 묵묵히 펼쳐보고 싶다. 산을 오르기전에, 그리고 산을 내려와서 말이다. 단순한 기술서도 아니요, 그렇다고 이론만 떠 있는 철학책도 아니요. 긴요한 장비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산 같은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