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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님의 서재

이제 나는 열정적 포개짐보다 고요한 포옹이 좋다. 당신이 간직한 금이 혹시 나로 인해 부서지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가서는 포옹이 좋다. 등과 등에 서로의 손바닥이 닿을 때, 가벼운 포개짐이 좋다. 고양이처럼 코끝으로 인사하며 시작하고 싶다. 끔찍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금 간 것을 계속 살피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키우고 싶다. 어렵더라도. (11)- P11
현재가 따분하거나 미래가 아득하게 느껴질 땐 자꾸 옛날을 불러낸다. 담벼락에 서서 옛 친구를 부르듯이, 턴테이블에 추억의 레코드판을 올리듯이 기억을 꺼내보는 거다. 옛날은 부르면 쉬이 오고, 눈 깜박이면 사라진다. (33)- P33
자신을 한곳에 내버려두고 먼 곳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멀리 갈 때는 불러 세우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놀라기 때문에 부르기가 두려운 사람. 그들은 내 앞에 자신을 앉혀놓고 자기를 찾으러 나선다. 이곳에 당신이 있어요.
말해줘도 믿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자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 혹은 더 낮은 곳에서 자신을 찾기 때문에 자기와 온전히 포개져 스스로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가는 사람. (34-35)- P34
어떤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태어난 후에도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내 앞의 나, 그 앞의 나...... 수많은 자신이 일렬로 서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남의 몸을 빌려 사는 듯, 그렇게 산다. 방법은 없다. 본인이 스스로를 알아봐야 한다. 이게 나구나, 이렇게 태어난 게 나구나, 받아들여야 한다. (44)- P44
첫 책이 어떤 얼굴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쓰는 사람은 모르는 채로 견디며 나아가야 한다. ‘어떤‘이란 형상, 미리 알 수 없는 책의 얼굴, 그것은 쓰는 자가 끝까지 홀로 지고 가야 하는 무겁고도 빛나는 휘장이다. (44)-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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