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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섬님의 서재

얘들아, 감정이 모든 걸 좌우한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이 풍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어. 감정을 고양시키면 큰 재산이 되기도 하고 그게 싹 사라져버리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인생이 되기도하는 거야. (44)- P44
메리 매카시(소설가, 비평가이자 활동가로 뉴욕 지성계를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는 자신의 분신인 소설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남자들을 가차 없이 평가했다. 남자가 똑똑하면 웃기게 생겼다. 남성미가 넘치면 머리가 비었다. 이러한 등식은 마치 어렵사리 체득한 지혜처럼 느껴졌고 내 또래들에게도 그러했다. 우리는 허구한 날메리 매카시를 인용하면서 승리감에 차 올랐다. 그의 우아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괜찮은 남자가 없다고 불평하는 여자가 아니라 인생의 진실을 파악한 인간으로 승격되었다. (205)- P205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해 그 고통을 감히 느낄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렇네." 나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엄마의 부드러운 얼굴이 결심이라도 선 듯 확고하고 단단해진다. 나를 보더니 강철 같은 목소리로, 이디시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모른다. (300-301)- P300
"오랜만에 맞는 말 하셨네." 우리는 동시에 웃기 시작한다. 누가 됐든 우리 둘 다 악의적인 말은 피차 한 문장 이상 내뱉지 않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내 생각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골몰하는 대신 더도 덜도 말고 딱1분이라도 그저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됐을 정도로 그 긴긴 세월을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우리 두 사람 다 감격하는 듯하다. (311)- P311
인생의 신비와 약속을 관통하는 진리가 아닐까. 엄마와 나는 더 이상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지 않는다. 드디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영구적으로 성취되었다. 나는 우리 둘 사이의 거리를 흡족하게 엿본다. 약간의 공간이 나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일용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내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날 것이라는 믿음. (311)-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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