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와 이어져 있으므로 유년기는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유년기의 일이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반드시 미성숙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인의 관계에서 되풀이되는 유년기의 테마는 우리의 일상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이를 통해 일상의 사건들을 피상적으로 넘기지 않고, 변화해 나아가는 사건들의 기승전결을 완전하게 겪습니다. 과거는 우리가 과거의 상실을 되풀이하거나 뭔가를 결정할 때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결정 요인을 끌어들이려는 충동을 느낄 때만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와의 연관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휘둘리지 않고 다만 그 과거를 참작하는 것입니다. 관건은 우리의 과거가 건강한 관계를 맺고 가장 깊은 욕구, 가치, 소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갈 가능성을 얼마나 방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23)- P23
어른이 되는 것의 목표는 결국 어머니와 재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우리에게 제공했던 것들, 즉 다섯 가지 열쇠를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서 가능한 한 많이 찾아내는 것입니다. (27)- P27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에게 애정 어린 돌봄과 배려를 25퍼센트 이상 바라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자신 안에서 찾는 법을 배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영적 스승은 수련자에게 깨달음은 내적 현실이며 스승으로부터 끌어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연인, 스승은 결국 우리 안의 내적 부모, 내적 연인, 내적 스승을 의미합니다. (28-29)- P28
다섯 가지 열쇠를 타인에게 줄 때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됩니다. 그 열쇠는 타인에게로 넘어가지만, 그것을 줄 때 우리는 보다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인간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열쇠는 자신의 내면에 사랑이라는 덕목을 구축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36)- P36
관심은 당신이라는 신비롭고 놀라운 실체에 관한 참된 주의력과 호기심을 요합니다. 당신을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부모나 상대는 단지 당신에 대한 자신의 믿음들을 충족시키는 것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믿음 또는 편견으로 인해 진정한 당신을 드러내는 정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그런 상태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39)- P39
"자신의 수용성(즉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 더욱 분명하며, 가치체계가 안전하게 내면화되어 있을수록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나 굴욕감을 지나치게 느끼는 일 없이 자신의 사랑을 더 자신 있게 효과적으로 줄 수있을 것이다." (43)- P43
따라서 성년기의 사랑은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는 사랑을 재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유년기에사랑을 받았던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정확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것을 요구하는 방법입니다. 상대는 독심술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유형을 상대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에 대한 의식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46)- P46
마지막으로, 무언가의 참모습 또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채 그대로 있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모호함을 견디는 이 능력은 시인 존 키츠가 "소극적 수용 능력" 또는 "사실과 이유를 성마르게 알려고 하지 않고 불확실성, 불가사의, 의혹 속에 존재하는 능력"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마음챙김에서 바로 그런 식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즉, 모르는 채로 계속 고요하게 앉아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자세로부터 어떤 특별한 의미가 무르익게 됩니다. (56)- P56
흔히 외로움의 감정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내적 자아를 애정을 가지고 돌봐줄 성인 자아가 없는 데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외로움은 또한 우리가 변화할 때나 어떤 입장을 취하면서 당당히 맞설 때 혹은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거나 자신에 대해서 깨달을 때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우리는 외로움을 말 그대로 짊어지고, 온갖 그릇된 곳들에서 동행을 찾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 아이‘가 ‘내면 부모‘에게 의존하지 못할 때, 그 아이는 그 대체자로서 어떤 대상에게 매달립니다. 아무 대상 또는 아무 사람에게나, 신뢰할 수 있는 자애로운 ‘내면 부모‘는 부적절한 애착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겁먹은 우리의 어린 동행을 다정하고 강력하게 지켜줍니다. 그럴 경우,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충격은 훨씬 완화됩니다. (93)- P93
우리는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왔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되는 것은 위험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폭력적인 학대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타인이 우리를 배신할 때 우울함에 사로잡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때때로 무력함에 빠지는 것은 자아와 통제를 버리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진정한 영웅이라면 무력함에 빠지는 시기를 기꺼이 맞아들입니다.
상실, 난관, 실망, 상처, 배신은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그리고 이후에도 내내 우리의 성장을 고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98)- P98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거절과 금지로 인한 괴로움과 분리를 겪으면서 자생력을 키워나갑니다. 부모가 "안 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자신의 소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고통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다른 무언가가 발달합니다. 금지는 우리에게 협상하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매순간 길과 방법을 알려주는 어머니는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데렐라와 백설공주처럼, 자신속의 ‘고아‘를 인식하고 성인의 운명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사악한 계모‘와의 시간이 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99)- P99
배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자극을 받아 집을 떠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혼자 힘으로 길을 헤치며 나아가 마침내 자립할 의욕도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신이 없었다면,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총리대신이 되고 파라오를 보필하는 특별한 운명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굽이마다 그런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칩니다. 단테는 자기가 사랑한 도시 플로렌스에서 추방당한 후에야 『신곡』을 쓸 수 있었습니다.(100)- P100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는 사악하고 잔인한 자신의 동생 세트의손에 토막토막 잘려 살해됩니다. 그 후,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가 조각난 그의 몸을 찾아내어 다시 이어 붙였을 때, 오시리스는 불멸의 존재로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의 자존감에 대한 반복되는 공격들은 우리를 토막 냅니다. 우리는 한동안 토막이 난 채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토막들을 찾아서 이어 꿰매는 우리의 여성적 능력을 통해 다시 한데 모아져서 완전체가 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대의 주술사들은 사지를 절단하는 상징적인 의식을 통해 남자들을 입문시켰습니다. 그리스도, 디오니소스, 오시리스-그리 고우리에게 있어서 그렇듯이, 절단은 흔히 굴욕과 학대로부터 자신감과 연민 어린 사랑으로 넘어가는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상처 입은 영웅이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이 절단과 복구 그 두 가지 모두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파멸 속에 사랑으로 이르는 길이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그 모든 나쁜 일들의 총체가 곧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을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과 그에 관한 우리의 노력은 예정된 우리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입니다.(101)- P101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대에게서 그리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겨우 25퍼센트 정도만을 추구하고(아이의 경우 백 퍼센트), 나머지 75퍼센트를 자기, 가족, 친구, 직업, 취미, 종교 그리고 심지어 애완동물(개는 다섯 가지 열쇠를 주는 것에 능숙합니다!)에게서 얻습니다. (104)- P104
성숙한 사람들은 만약 어떤 한 가지 나쁜 점이 이점들보다 훨씬 더 크다면 좋은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당신에게 푹 빠져 있고 당신이 나에게 많은 것을 준다 할지라도, 당신이 그처럼 거짓말쟁이에다 고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계속할 수 없어." 당신은 상대의 결점을 무시하거나 부인하거나 혹은 그 결점에 관해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상대의 장점에 유혹됩니까? 아니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합니까? 그 ‘비록 ......일지라도‘를 무시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슬픔을 참고 견디는 것이 정말로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비록 당신이 성적으로 나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준다 할지라도, 비록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다 할지라도, 비록 내가 다른 누군가를 찾게 될지 어떨지 모른다 할지라도, 당신이 내가 바라는 성숙한 수준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어." (148)- P148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또는 상대를 소유한다고 믿으면서 생겨나는 기분 좋은 감정을 사랑과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할 때, 나는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심을 느끼고 보여줍니다. 그리고 상대가 때로 나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조차도 상대를 사랑합니다. 나의 사랑은 상대가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시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은 나 자신의 결핍이나 기대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주고받는 것에 대한 헌신을 반영합니다. (166)- P166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사랑이 묻어나게 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 기쁨을 느낄 때, 자신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새롭게 익힌 태도로 더욱더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그 결과 상대는 더욱더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에게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보여달라고 더 이상 안달하지 않게 됩니다.
내면의 밑 없는 구덩이가 마침내 채워졌거나 아니면 드디어 그것이 덜 성가시게 된 것입니다. 이제 결핍은 풍요로움으로 바뀝니다. 자신이 놓친 것을 타인에게 베풀 때, 더 이상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에 목을 매지 않을 때, 사랑으로 이르는 길로 접어듭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을 강요하기보다는 그 답례로 사랑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을 때 그것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168-169)- P168
중독은 강박관념
중독은 마음속에서는 강박관념이고 행동에서는 강박충동입니다. 강박적인 생각이 강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놔둘 때 중독을 키우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허용하되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은 중독을 끊어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면서 끊임없이 상대를 생각할 수 있지만, 당장 만나러 가기 위해 다음 출구에서 방향을 틀고 나와 전화를 걸 필요는 없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독 물질을 주입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170)- P170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끝낸 관계가 나빴을수롣 슬픔 또한 더 격해집니다. 그 까닭은 아주 고통스러운 관계를 끝낼 때 상대를 놓아주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헛되이 투자한 모든 희망과 노력까지 한꺼번에 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슬프게도 다섯 가지 열쇠가 상대의 내면 어딘가에 있다고 착각했고, 그래서 오로지 그 열쇠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침내 그 ‘언젠가‘가 결코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가피한 결말에 하릴없이 맞서 싸울 때 가장 극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우리는 사랑을 흘려보내기 전에 고통스럽게 사랑을 붙듭니다. 이 관계는 애초 생각한 그런 관계가 아니었고, 노력한 대로 되지 않았으며, 결국 바라는 대로 되지도 않았고, 그곳에 있다고 믿었던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비통한 슬픔의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기대했던 것을 얻을 수 없었다는 마지막 깨달음일지도 모릅니다. 만일 유년기에 그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면, 너무도 익숙해서 더욱고통스러울 것입니다. (273)- P273
만일 관계가 계속되는 동안보다 관계가 끝난 뒤에 더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슬픔이 과거의 상실을 닮았고 그 상실을 되살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단지 관계가 끝나는 것을 슬퍼하기보다 과거의 상실을 더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주기를 바라는 많은 결말들이 관심을 받을 기회를 엿보면서 우리의 내면에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274)- P274
고통스러운 결별의 과정 동안 또는 외도나 배신으로 인한 위기의한복판에서 영적 수행이나 그 외의 모든 정신적 노력이 평정을 되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수행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모차르트와 <모나리자>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서 예술이 쓸모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때 모든 것이 백지로 돌아갑니다. 그처럼 완전한 상실 앞에서 자아는 자신의 진실한 얼굴을 직면합니다. 좌절감을 느끼고, 겁을 집어먹고, 고통스러운 애착에 사로잡히고,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무력한 얼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험 부담이 있는 방안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유일한 합리적 조치가 되기도 합니다. 즉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자아가 계속 목소리를 내고 힘을 되찾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것은 엄청난 수련을 요합니다. 그 점에서 결별은 영웅적 여정의 분투 단계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별의 시기 동안 해야 할 일은 무척 간단합니다. 사랑의 한복판에 뛰어들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사랑이 우리에게 남긴 조각들을 다음에 올 사랑에 쓰는 것입니다. (275)- P275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은 건강한 관계가 다른 누군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숙한 관계는 엄격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은 언제라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하며, 배신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을 허용하지만 상대가 사과하고 보상하고 진정으로 변화할 때 그 배신을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을 베풀 수 있는 유연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
누군가에게서 다섯 가지 열쇠를 발견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신뢰하고 그에게 지원받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와 똑같은 다섯 가지 열쇠를 자신에게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게 됩니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의 결점을 감당하는 것이며, 그 두 가지 모두를 두려움 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인이 져야 할 쉽지 않은 임무입니다. (300)- P300
다양한 사람들이 다섯 가지 열쇠를 우리에게 주기 위해 나타납니다. 우리는 존 혹은 메리가 자신의 나머지 반쪽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나머지 반쪽, 다시 말해 내면에 있는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 즉 원형적인 아니무스와 아니마에 대한 헌신을 저버립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의협심과 영웅주의의 화신인 로빈 후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존 혹은 메리가 바로 그 로빈 후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을 구현하는 내면의 그 은유적 존재를 현실의 외부인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잠재력을 위축시킵니다. 우리는 관계에 관련된 필요들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작업을 혼동합니다. 타인과의 결혼과 완전한 자기와의 연대 그 두가지 결합이 모두 필요함에도, 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완전한 자기와의 연대를 깨뜨립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 안의 로빈 후드만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활기찬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매혹적인 상대의 이미지는 꿈속에서 우리를 찾아오거나 사기가가장 저하되어 있는 새벽 3시에 우리를 깨울 것입니다. 그 혹은 그녀는 하나의 이미지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마치 그녀가 오직 자신의 ‘여성적 자기‘에서만 구할 수 있는 충족을 제공하는 듯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그가 자신의 ‘남성적 자기‘에서 구할 수 있는 충족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다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질 텐데."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 이순간 그와 함께 있기 때문에 결핍감과 상실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순간에 느끼는 공허감은 완전한 자기의 부재입니다. 공허한 구멍은 내가 혼자 힘으로 이곳에 존재할 때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주기를 바라고 그에게 구세주와 같은 힘이 있다고 믿을 때 생겨납니다. 그 구멍은 나의 빈자리입니다. (310)- 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