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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박준 시인의 시 「가을이 겨울에게 여름이 봄에게」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이 시는 군대라는 공간 속에서 지나온 청춘의 불안과 상처를 아주 현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차가운 계절과 눅눅한 공기,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묵직하게 남는 시이기도 합니다.

아래 시를 천천히 읽어보세요.



가을이 겨울에게 여름이 봄에게 - 박준



철원의 겨울은 무서웠다 그 겨울보다 무서운 것은 감기였고 감기 기운이 침투할 때면 얼마 전 박이병이 공중전화 부스를 붙잡고 흘렸다는 눈물보다 더 말간 콧물이 흘렀다


누가 감기에 걸리면 감기 환자를 제외한 소대원 전체가 평생 가본 적도 없는 원산에 탄두 같은 머리를 폭격해야 했다


애써 감기를 숨기고 보초라도 나가면 빙점을 넘긴 콧물이 굳어져 코피로 변해 흘렀다 부대 앞 다방 아가씨를 본 것도 아닌데 어린 피가 흰 눈 위에 이유 없이 쏟아졌다


​철원의 겨울은 무서웠지만 벙커에서 보초를 설 때면 겨울보다 여름이 더 무서웠다 가끔 박쥐들이 천장에 몰래 매달려 있었지만 우리가 무서워한 것은 벽에 스며 있는 핏자국이었다


​핏자국이 점점 진해진다는 소문도 돌았고 벽에 기대 보초를 섰다가 군복에 피가 묻어나왔다는 이도 있었지만 눅눅한 여름, 벙커 속의 피냄새가 온몸을 휘젓다 귀로, 코로, 입으로 터져나오는 기분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목욕을 해도 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갑자기 휴가를 떠난 박일병은 코를 틀어막던 애인과 이별을 하고 돌아왔다

여름이 지나도록 피냄새는 계속 끓어올랐다 그렇게 벙커에 차오르던 냄새가 타악 터져나오면 저만치 보이는 북쪽의 능선에도 피 같은 단풍이 묻었다



■ 해설 및 주제 분석


이 시는 군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두려움과 상처, 청춘의 현실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시 속 공간인 철원은 극한의 추위와 긴장, 외로움이 응축된 장소로 그려집니다.

처음에는 감기와 추위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시가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점점 더 깊고 무거워집니다.

특히 【벽에 스며 있는 핏자국】과 【피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상처와 기억을 상징합니다.

이 시는 단순히 군대의 힘든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춘이 견뎌야 했던 불안과 공포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구절인 【북쪽의 능선에도 피 같은 단풍이 묻었다】는 표현은 계절의 풍경마저 상처의 기억으로 물들어 보이는 화자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이 시는 말합니다.

어떤 시간들은 지나가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몸과 마음에 남는다고.



■ 시가 주는 메시지


청춘은 아름답기만 한 시간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가장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웠던 시절로 청춘을 기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뎌냈기에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상처를 숨기지 않고 바라보며 그 시간 역시 삶의 일부였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하나의 감상


철원은 외가집이 있는 곳이라 어렸을 때부터 제겐 익숙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 강원도에서 한 달 살기 아닌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어 서울과 달리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게 군인과 군용차라 문득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건 냄새처럼 남아 있는 기억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장소나 시간을 떠올릴 때 이상하게 냄새와 함께 기억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겨울 공기의 차가움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벙커의 눅눅한 냄새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 속 청춘은 아주 거칠고 외로운데 그렇다보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피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는 부분에서는 몸보다 마음에 남은 상처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 하나쯤은 있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지나간 일처럼 보여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시간 말입니다.

혹시 지금, 아직도 잊히지 않는 어떤 계절이 있으신가요?

그 기억이 아프더라도 그 시간을 지나온 당신 역시 충분히 잘 버텨온 사람이라는 걸 오늘은 조금 인정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겨울에게 여름이 봄에게』는 박준 시인의 시로 군 생활 속 청춘의 불안과 상처를 현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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