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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우리 문학의 행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좌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매년 매시기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우수' 단편들은 언젠가부터 내게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걸 내 줄어든 독서량으로 탓한다면 별로 할 말이 없지만, 어쨌거나 여기에 실린 작품이 저기에 가서 또 실리고 거기에 실렸던 작품이 나중에는 다시 작가 한 명의 단편집에 실리고 하는 등의 모양새가 그닥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솔직한 심정으로 그건 "나무에게 죄를 짓는 일이야"라고까지 되뇌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수상 작품집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정지아'라는 이름 하나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역시 출간이 되자마자 리스트에 올려뒀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구입했다.) 수상작인 "풍경"은 이미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실린 바 있는데, 이제야 이 소설을 읽은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단 내 검색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는 듯싶다.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정지아를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그의 단편집 <행복>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경쾌한", "발랄한", "기존의 서사적 문법을 뒤집는" 등의 수식어가 난무하는 요즘 소설들 사이에서 정지아의 <행복>은 오랜만에 만난 수작이었다. 그의 문장은 짧고 경쾌해서 단숨에 읽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특이한 형식상의 기교를 부려서 새롭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 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자연스런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신 거기에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있을 법한 일들이 존재하고 그 관계들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을 법한 고민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정지아의 소설에서는 톡 쏘는 나프탈렌 냄새가 아니라 따뜻한 인간의 냄새가 난다. 이를테면 '강된장'이나 '묵은 김치' 같은...

<풍경>도 그렇다. 백석 식으로 말하자면 정지아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어느샌가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기에 귀기울여 보면, 평생을 어머니 곁에서 살아온 한 남자가 있고 그 자신도 이제는 늙어가는 중이다.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 수조차 없는 외로움은 낯모르는 아낙이 깨끗이 빨아놓고 간 이불에서 맡아지는 냄새마저도 피하게 만든다. 겨우내 강된장과 묵은 김치만으로 밥술을 뜨시는 어머니는 평생을 함께한 막내가 아니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두 형들만을 기억 속에 남겨두고 있다. 벙어리로 불리던 하우댁이 그렇게 말 많은 아낙으로 바뀔 만큼 세상은 변해가는데 두 모자만이 아직 영원의 저 너머에 존재하는 기억 속에 머무르고 있다.

꽤나 적막한 풍경이지만 <풍경>은 그 옛날 멍석 위에서 콩을 패던 어머니와 어린 그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원처럼 느리게 그러나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간 그네들의 삶을, 그리고 우리네 삶의 풍경을 그려낸다. 나는 소설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고 난 그날 밤, 창밖에 스친 빗방울이 서글프고도 정겹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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