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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서 그런가?'

마당에 아직 몽울져 있는 백목련을 내다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차마 발음 내뱉을 수 없는 울컥함에 기어이 쓰디쓴 눈물 몇 방울 책장 위로 떨어뜨린다. 절기상으론, 이미 깊은 봄인 것이다. 나는 저렇게 떨고 있는 목련을 바라보면서도 마음 가득 환한 봄볕을 느낀다. 아무렴, 깊은 봄 밤 노란 스탠드 하나 켜진 내 책상 위엔 제비 한마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윤대녕의 새 소설집이 나올 무렵, 나는 미국의 사진작가 커티스가 찍은 호피 인디언 사진을 구해다 늘 볼 수 있도록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깔아놨다. 이 사진은 무너질 듯한 건물 옥상에서 기이한 머리 모양과 복장을 하고 있는 세 명의 호피 인디언들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듯한 먼 곳 어딘가를 응시하는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본래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구해다 놓은 사진은 흑백이다. 옅은 갈색톤이 전체에 깔려 있는. 그들의 뒷모습은 위태롭다.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이 위태롭게만 보이는 허름한 건물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이 그렇게 그리웠는지 거기서 그대로 굳어버릴 것처럼 서 있는 그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빌리 할리데이의 음반을 걸었다.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 그녀가 살아 있었더라면 정말 꼬장꼬장하고 고집 센 할머니가 돼 있을 거다. 이런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그 즈음 내가 자정 무렵만 되면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베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씩 그런 식으로 나를 달래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까닭없는 그리움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경쾌함이 아니라 더 깊은 우울이라는 것을. 이럴 땐 그 누구의 위로도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런 나날들이 조금 더 지나고서 나는 겨우 윤대녕의 새 소설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아랫목에 숨겨둔 군밤을 한 알씩 까먹듯이 매일 밤 딱 한 편씩만 읽기로 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는 데는 8일이 걸렸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 지구에서 나 혼자만 깨어 있다고 느꼈던 그 시간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을 읽어나갔다. 가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읽고 난 다음 사방을 둘러보면, "어찌된 일인지 어두운 방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95쪽)

이전까지의 윤대녕 소설들이 자기만의 고독을 어찌할 줄 몰라 상처주고 상처받는 이들의 단면을 이미지화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타인의 삶에 간여하면서 한 발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려고 한다. 그가 더 이상 다가오기를 멈춘다면 "나머지는 내가 걸어서"(200쪽) 가면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치열하던 고독과 그리움도 윤대녕에 의해 한없이 따사로운 위로를 받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윤대녕의 소설을 읽고 났을 때 허허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지낼 때가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번 소설집을 읽고 남 몰래 흘린 눈물이 많아서였을까. 지금 이 계절이 봄이기 때문일는지도 모르지만.

삶이 지속 되는 동안 어떤 그리움은, 고독은 어느새 자연스레 자기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것을 거부하려 했든, 전적으로 수긍하려 했든 간에 말이다. 일찍 끝장내버리리라고 다짐했던 내 생이 스물다섯해 이후로도 근근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을 보면 삶이란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 쉽지 않은 시간을 버티며 윤대녕도 여기까지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영원의 나라에서 돌아온 제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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