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 (John Bunyan)의 『천로역정 (원제: Pilgrim Progress)』의 엄격한 청교도적 가치를 강조하고, 네 자매와 어머니를 통해 페미니즘적 시각을 부각한 작품이다. 긴 분량과 반복되는 지루한 설교조의 문장은 저자 특유의 유머와 흥미진진한 네 딸의 로맨스로 잘 가렸다. 아무래도 둘째 딸 조의 절친한 친구인 '이웃 소년 로리의 짝 찾기'가 인기몰이에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은, 소위 말하는 '밑밥'이 잘 깔린 작품이기도 하다.
작은 아씨들은 페미니즘 소설로 평가받는다. 경제력을 상실한 아버지는 실질적 가장이 되어 가족을 부양하는 어린 딸에게 가려져 역할이 미비하다. 또, 마치 씨 부부를 비롯해, 첫째 딸 메그와 존에게서도 가부장적인 전통을 탈피해 서로 존중하고 협조하는 부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딸들은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이며, 남자의 경제력에 개의치 않고 자신을 사랑해줄 남자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한다. 특히, 가장 연약하고, 수줍음이 많아 의사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셋째 딸 베스를 가장 먼저 생을 마감하는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나름의 한계도 보인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고, 글을 써서 생활비를 책임지고, 부잣집 남자의 구애를 뿌리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글쓰기)에만 몰두하던 조에게 저자는 갑자기 펜 대신 빗자루와 행주를 쥐어주고 새로운 가치와 기쁨을 발견하게 한다. 조는 '멋있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p. 311)'이고, 부모님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다며 '신의 섭리이자 신이 내린 임무' 운운하는 대목은 허탈하다. 애초에 <좋은 아내들>이란 당혹스러운 제목으로 세상에 나온 걸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설상가상으로 '멋있는 여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여자' 조는, 늙고 못생기고 가난한 바에르 교수를 남편으로 맞이한다. 아무리 독자들이 원하는 대로 로리와 조를 부부로 맺어주기 싫었다고 해도, 일찍부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탐색하고, 그것으로 가족을 부양할 만큼 경제력과 재능을 연마한 젊은 여성을 끝내 늙고 가난한 교수의 아내로 설정한 건 못내 아쉽다. 늙은 로체스터가 화재사고로 한쪽 팔과 눈을 잃고 나서야 제인 에어의 차지가 됐을 때의 서글픔과 맞먹는다.
늙고 가난한 남편이라도 조라면 씩씩하게 잘 살아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랬을까? 새 세상을 갈망하며 될 수만 있다면 혁명가가 되고 싶다던 재능있고 성실한 고작 스물네 살의 조에게 마흔이 넘은 가난한 남편이라니! 혁명가가 싫고, 되고 싶지도 않다던 에이미보다, 아니 에이미만큼 조도 분명 행복하겠지? "늘 이래요. 재미있는 건 모두 에이미 차지이고 난 일만 해야 하죠. 정말 불공평해요. 오, 정말 너무하다고요! (p. 120)"라며 미래의 남편과 제 인생이 걸린 줄은 꿈에도 몰랐던 외국 여행 기회를 놓쳐 아쉬운 마음에 소리 지르던 조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