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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기. 빌 펄롱은 석탄을 배달(불과 40년 전인데 연료로 석탄, 조개탄 등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하는 회사를 꾸려가며 아내와 다섯 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빌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지만 한 유복한 부인의 도움으로 잘 자랄 수 있었다. 영화는 어린 시절 빌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간간히 보여 주며, 빌의 심성과 고뇌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려준다. 빌은 어려움에 처한 아이를 보게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고, 몇 푼 안되는 동전이라도 쥐어 주는 따듯한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석탄을 배달하러 갔던 수녀원의 석탄창고에 소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녀는 임신 중이었는데, 원장이 이곳에서 아이를 낳으라며 가둬 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수녀원에 들어가니, 원장을 비롯해 수녀들이 이 소녀가 또래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 아이들의 장난으로 석탄창고에 갇혔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원장은 빌에게 아직 학교에 다니는 딸과 학교에 입학해야 할 딸들이 있을텐데, 수녀원이 운영하는 그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요즘 무척 힘들다는 위협을 가한다. 빌은 무엇인가 께름칙하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어 소녀를 두고 나오지만 마음 한 편이 자꾸만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 


부인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은 이 수녀원이 학교와 연계되어 있고, 동네 대소사에 관여하며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웬만하면 그냥 모른척 넘어가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또한 자신의 다섯 딸을 생각하면 그 소녀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부인의 선물을 찾으러 갔던 빌은 발걸음을 옮겨 수녀원으로 향해, 그 소녀를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실제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녀원에서 성폭력을 당했거나 미혼모인 여자들을 데려다가 세탁소에서 무임 강제노동을 시키고, 출산한 아이들은 입양을 보내거나, 아무렇게나 대해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다. 1993년 한 수녀원의 부지에서 이름모를 여인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형제복지원 사건과 비슷한 류의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사건이 불과 30여 년 전에 벌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영화 속에서 빌은 모두가 알면서 침묵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에 작은 친절을 베품으로써 균열을 만들어 냈다. 영화 제목처럼 '사소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작은 행동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영화 제목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어찌보면 사소한 행동에 필요한 큰 용기와, 사소한 행동이 가져온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깨우는 반어적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줄곧 빌을 중심으로 그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 아일랜드의 겨울 마냥 음울하고 침울한 현실 속에서도 빌이 그 겨울을 녹이는 석탄을 배달하듯, 따듯한 친절을 건네는 모습이 마음 속에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98분. 미국. 12세 이상 관람가. 2024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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