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하루살이

블루베리 가지치기를 하고 나온 잘린 가지로 올해도 삽목을 했다. 지난해 삽목한 것들은 한겨울 혹독한 바깥에 그대로 둬 봤는데, 아직 눈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올해 새롭게 삽목을 한 것 중 2/3 가량은 실내에 들여놓고, 나머지는 밖에다 두었다. 



실내에 둔 것은 창가 쪽은 벌써 잎눈이 터서 새잎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쪽에 있는 것은 눈이 틀까 말까 한다. 어떤 조건에 놓여져 있는가에 따라 성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때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리를 바꿔준다면 소위 말하는 공정한 기회의 제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존 롤스나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정의에 가까운 행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꼭 자리를 바꾸진 않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잘 자라고 있지 못한 화분에 물이나 영양 측면에서 더 신경을 써 주어 관리하는 것도 이런 공정한 측면의 하나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자란 환경에 놓여서 먼저 성장한 것들이 최상의 상태로 자라도록 관리하는 것도 또다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런 선택은 자칫 능력주의로 흐를 수도 있지만, 니체가 말하는 초인주의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즉 주어진 환경 하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잘 자라고 있는 것들을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며 좋지 못한 환경으로 끌어내리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마저도 실력인 양, 또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뛰어나서 그런 거라는 자만과 오만이 섞여 있다면 이것은 초인주의적 관점이 아닌 능력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조건이 좋아서 이루어낸 성과를 자신의 능력인 거 마냥 자신이 모두 소유하는 것을 마땅하다 여기는 자세 말이다.  


올해는 블루베리 삽목을 초인주의적 관점에서 키워볼 심산이다. ^-^ 잘 자라는 환경에 놓여진 것들이 최상의 상태로 자라도록 두고, 조금 조건이 좋지 못한 것들에겐 그나마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을(즉 물관리나 양분 관리에 더 신경을 쓰는) 제공해서 키울 생각이다. 최상의 상태로 자라난 것들이 꾸준히 최상의 상태로 자라게 된다면 2~3년 후 땅으로 옮겨 심을 수 있지 않을까.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