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5 경주 APEC에서는 트럼프가 촉발시킨 자유무역에 대한 위협과 새로운 화두로 AI와 인구구조의 변화가 가져올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 눈에 띈다. 이런 새로운 논제와 더불어 경주 선언 전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속적인 글로벌 도전과제로 에너지, 식량안보, 환경, 극한 기상 및 자연재해를 들고 있다.
이 도전과제를 언급하면 퍼뜩 떠오르는 것이 탄소제로를 통한 기후 온난화의 억제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주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구체적인 목표와 행동강령을 제시했으며, 실은 그 이전부터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하지만 이런 국제적 협약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나라를 찾기 힘들며, 과연 앞으로도 이런 실천을 제대로 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렇게 이상 또는 목표만 존재하고 그 실천이 요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너지 전문가인 바츨라프 스밀은 이 책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통해 탄소 제로라는 목표가 조금은 허황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현재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근원은 화석연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에너지로서의 화석연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해 화석연료를 줄여나가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또 이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화석연료는 꼭 에너지 분야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바츨라프 스밀은 세계를 움직이는 네 가지 요소로 암모니아, 강철, 콘크리트(시멘트), 플라스틱을 들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네 가지가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현대 문명은 존재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지금 당장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을 둘러보라. 사무실이든 집이든 거리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두 콘크리트와 강철로 둘러싸여 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것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우리가 하루 세 끼 먹고 있는 식량을 생산하는데 암모니아(요소 비료)가 없다면 현재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네 가지 모두 화석연료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즉 우리가 아무리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시킨다 해도 우리 문명을 이루는 네 가지 축을 바꾸지 못하는 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제로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기후온난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현재 양 극단에 치우쳐 있다. 지금 이대로 화석연료를 사용하다가는 머지않아 지구가 멸망 또는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멸망론과 과학의 발달로 탄소포집 등을 비롯해 첨단 기술로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 것이라는 희망론이 그것이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의 저자 스밀은 실제 우리 현실은 이 두 극단 사이의 어디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을 0으로 향하도록 하자는 이상론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머지않아 첨단기술로 극복할 수 있으니 마음껏 써도 괜찮다는 낙관론에 젖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 극단의 처치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한 탄소배출을 줄여가는 방식을 찾아 이를 실천해 나갈 약속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암모니아를 줄이기 위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기 위한 재활용,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단열재의 사용 등등. 작지만 실현가능한 것으로부터 우리는 어두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조금은 밝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으리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지, 세상이 지속가능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책장을 펼쳐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