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할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처럼 성공한 사람이 겸손하기까지한(?) 예는 매우 드물다. 당장 눈 앞에 벌어진 성공에 취하고 비틀거릴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어떻게 판단해야하는 것일까.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로 보자면 돈과 명예, 권력까지 쥐게 되었을때를 성공이라고들 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순간의 그들이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겠는가.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성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성공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변하게 되고, 당연히 변하게 된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건 일종의 보상심리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하기까지하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온 유혹의 순간, 그는 유혹앞에 영혼을 팔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면 삶이 편해질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성공하면 삶은 어쩔 수 없이 더 복잡해진다. 아니, 더욱 복잡해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한 갈증에 자극을 받으며 더욱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라던 걸 성취하면 또 다른 바람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린 또 다시 결핍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완벽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달려든다. 그때껏 이룬 것들을 모두 뒤엎더라도 새로운 성취와 변화를 찾아 매진한다. -p.121
여기 인생의 성공과 실패, 좌절이 뭔지 보여주는 헐리우드식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이 있다. 데이비디 아미티지, 11년동안 서점에일하며 변변한 데뷔작하나 없는 시나리오 작가인 그에게 어느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자신이 쓴 <셀링 유>의 시트콤 대본이 텔레비전 방송국에 팔리면서 시트콤으로 제작되고 그 시트콤의 성공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셀링 유>는 시청자와 평단의 호평으로 시즌3까지 제작되는 기염을 토하고 데이비드의 몸값도 나날이 치솟는다. 그러던 중 자신의 투자상담가인 바비를 통해 영화광인 백만장자 필립 플렉이 자신이 예전에 쓴 <세 불평꾼>이란 대본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제안을 전해듣게 되고, 자신은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플렉의 제안을 받아들여 플렉소유의 섬으로 찾아가 그가 없는 동안 섬에서의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비틀린 욕망과 그릇된 가치관으로 꼬일대로 꼬인 플렉과의 만남 이후 그에게 인생최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작가로서 치명적인 표절의혹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그가 쥐고 있던 성공한 작가로서의 부와 명예는 모래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함께 일했던 모두가 그에게 철저하게 등을 돌린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만봐도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데이비드가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이나 진부한 결말때문에 뒷부분에선 다소 실망하였다. 저자의 유명한 전작인 <빅피쳐>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이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빅피쳐>에 대한 기대가 반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빠른 전개나 몰입도가 높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짧은 시간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눈부신 성공과 좌절, 배신과 음모라는 롤러코스터같은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비유하긴 그렇지만 TV재연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1시간짜리 에피소드처럼 헐리우드식으로 고급스럽게 포장했으나 스토리자체가 진부하기 때문에 신선하다는 느낌은 없다. '저건 정말 막장이다'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리모컨의 채널을 돌리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이 드라마의 뻔한 유혹에서 쉽게 눈을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진부함,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누구나 그렇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줄거리가 식상할 망정 성공을 바라보는 저자 나름의 사유는 그나마 이 책이 '사랑과 전쟁'보다 막장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플렉과 데이비드의 파시즘과 인간본질에 대한 대화, 성공으로 인해 변하는 데이비드와 그의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의 속물근성에 대한 반성들이 그것이다. 그런 교훈마저 가볍다고 느껴지지만 뭐 이런 소설을 보며 철학적 깊이를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쉽게 접근해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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