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볍게, 천천히
  • 굿바이 동물원
  • 강태식
  • 10,800원 (10%600)
  • 2012-07-13
  • : 1,085

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마음속에 늘 품고 있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삶은 죽음을 먹는 것이다" 라는,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이니, 밥벌이가 치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삶은 하루 하루 죽음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지루할 수 없고, 빚지지 않은 적이 없고, 치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이다. 나이가 들고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회의가 들고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마다 난 이 말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기술이 고도화되고 심화되는 경기침체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로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몇십년째 제자리인 급여로 인해 먹고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죽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치열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치열함에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버거워하고 있다.

 

여기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후 어둡고 긴 터널의 실직생활에 빠진 남자가 있다. 그의 아내는 적금통장을 깼고 자기 대신 동네 마트에 취직을 했다. 그는 돼지엄마라는 사람을 통해 마늘까기 부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울고 싶은 날이면 마늘을 깐다는 그는 인형눈알 붙이기, 바비인형 속눈썹붙이기, 학과 공룡알 만들기등 다양한 부업을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인형눈알을 붙이다 본드를 흡입하게 된 그는 환각에 빠지며 헤어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돼지엄마를 통해 준공무원에 해당한다는 동물원 취업 제안을 받고서 한 달동안 체력단련에 매진한다. 생각보다 낮은 경쟁률로 바로 합격하여 출근하게 된 그는 자신이 동물원의 동물로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한순간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동물탈을 쓰고 동물흉내를 내며 일하는 그 곳에서 때때로 괴롭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통해 진한 동료애로 울고 웃으며 인간성을 회복해나간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보았을 때 정말 기발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의 전개를 머리속으로 그리자 그렇게 슬프고 비통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과 함께 고릴라사에서 일하는 만딩고나 앤, 조풍년의 과거사를 통해 그려지는 현실의 단면이 애처로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남을 배신하고 짓밟아야하고 아등바등 하루를 살았지만, 결국 동물이 되어서야 인간답게 살게 된 그들을 보며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늘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보다 쉽게 일하는 사람들만 비교하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단할까 한숨지은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쉽게 돈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회는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그 돈보다 높은 효율과 가치를 기대하며 숫자로 모든 것을 재단해왔다. 사람들은 사회가 기준한 대열에서 낙오되었고 대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잔인하고 독해졌다. 독해진 그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했고 모든 가치의 잣대가 돈으로 환산되었다.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 시대의 비참함을 저자는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때론 아픈 곳을 살짝씩 건드리기도 하고 비틀기도 하고 진지한 날카로움으로 폐부를 후벼파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을 보며 나는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방식이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소설을 보며 나 자신을 버리며 일했다고 억울해했던 시간과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들이 먹고 사는 것의 위대함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고릴라탈을 써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고릴라탈을 쓰고 일하면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럽고 치사한 직장생활도 하루에 열두번도 더 써내려간 사직서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때문에 오는 상실감과 허탈함은 그들을 좌절의 늪에 빠뜨리고 소설의 말미에 동물원의 동물들은 아프리카 원시림의 동물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는데 사람으로 살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먹고 산다는 것 이상으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가혹한 현실속에 '세렝게티 동물원'은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동물원에 갈 때마다 치열하게 사는 그들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p.214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