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의 줄거리를 보고는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파리의 밤거리에서 사라진 여인, 그리고 며칠뒤 작은 새장안에서 발견된 그녀는 사라져버리고 끔찍한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무엇보다 표지를 장식한 어둠 속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이 불길한 인상을 남겼다. 젊고 가녀린 여인들이 희생되는 살인사건 이야기인가하고 지레짐작하며, 그래도 읽고 싶다는 마음과 읽고 싶지 않다는 불편함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 갈등사이에서 결국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울었지만 책을 읽기도 전부터 마치 암흑 속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몹시 불안한 전율이 일었다. 그 느낌이 미스테리한 음악의 전조처럼 음산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난 뒤에는 그보다 더 지독한 분노와 슬픔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무거운 내용과 잔인한 살인, 과연 나는 얼마만에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무척 걱정했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긴 순간 그런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날은 종일 굵은 빗줄기가 바람을 따라 흩날리고 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띄엄 띄엄 정적을 깨는 그런 날이었다. 이런 날에 읽는 책은 무엇보다 '알렉스'와 같이 음침하다면 더없이 머리속의 상상을 자극하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빗소리는 마치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영화들이 그렇듯 살인이나 사건이 일어나기전, 긴장감을 고조시켜 주었으며 책 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더해졌다. 첫 장을 펼친 순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게 되었으며 중간에 책을 덮을수도 없었고 마지막장까지 그악스럽게 책을 붙들고 있는 내 자신과 마주해야했다.
이 책에는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비롯해 145cm의 최단신 형사반장 카미유, 그리고 훤칠한 미남에 부자인 형사 루이와 구질구질한 구두쇠 형사 아르망까지 극적 재미를 더한 비범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때론 웃음을 주기도 하고 칼같은 지성으로 허를 찌르며 사건을 하나 하나 해결하는 부분이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지만 카미유 반장의 감성적 접근법이 마음에 들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지만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는게 그런 이유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다소 무겁고 슬프다는 걸 생각하면 자극적인 재미만을 쫓을 수 없었다는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도 가족이 등장한다. 앞서 읽었던 'Dinner'만큼이나 비틀리고 일그러진 모습의 가족구성원들이 진실을 외면한 채 서로 상처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사회에 어떠한 관계보다 가족이 갖는 폐쇄성과 보수성은 매우 치명적이라고 봐야한다. 책장을 덮으며 또 한 번 가족을 생각하게 됐다. 세상에 태어나 선택의 결정권도 없이 가장 먼저 맺게 되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그늘을 이제 서서히 거두고 변화하지 않으면,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현실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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