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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의 라이브러리
  • 강남 좌파
  • 강준만
  • 14,400원 (10%800)
  • 2011-07-22
  • : 1,827

누군가 나에게 너는 좌파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좌파인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한총련이 마지막 불꽃을 장렬하게도 피워올리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한총련은 96년 연대사태를 마지막으로 하향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한총련이 잘못해서 하향길을 걸었다기보다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내가 대학을 들어갈 때는 한국 경제 역시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고, 대학 3학년 가을에 IMF가 터지면서 대학생들의 패러다임자체가 바뀌었으니까. 


하여튼, 그 한총련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올리던 그 시점에, 나는 그 흔해빠진 가투 한번 나가지 않았던 새침때기 여대생이었다. 새침하고 해맑은 얼굴로 그들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부끄럽지만 1997년 대선때 나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회창에게 표를 던졌고, 2002년 대선때는 어령샌님의 조언에 따라 또! 이회창에게 표를 던졌다. 슬프고도 부끄러운 과거다. 그때부터였나보다. 내가 표를 준 후보는 단 한번도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징크스 같은 게 생긴 게. 젠장. 내 표는 단 한번도 대통령을 만들지 못했다. (이 징크스 때문에 2012년 대선 투표때 얼마나 망설였는지는 어리석지만 나에게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그런 나를 정치로 눈 돌리게 한 것이 노짱 탄핵사건이었다. 그때는 주로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 집회를 했다. 나의 첫번째 가투(?)는 교보문고 앞 촛불집회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빠'질 역사는 유구하다. 노빠를 거쳐 유빠로 이어지고 곧 문빠에 안(철수)빠에 안(희정)빠 까지 이어졌다. 나는 정절강한 여인이므로 한번 빠질을 시작한 상대는 그 사랑을 거두지 않는바, 내 사랑의 목록은 점점 길어지고 있으되 부끄럽지 않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노짱의 탄핵사건으로 노짱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역설이다. 


이놈의 책 덕후는 빠질도 책으로 시작한다. 


그때부터 우리집 책장에는 정치 경제 관련 항목이 생겨났다. 유시민의 책들을 콜렉팅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문재인의 책들에 각종 좌파(?) 정치 경제인의 책들이 줄을 이어 들어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을 읽었다. 오바마에 노암 촘스키에 수전 손택과 하워드 진이 끼어들었다. 김어준과 이상호, 주진우의 책들도 어깨를 나란히하며 꽂혔다. 그 책들은 서재가 아닌 거실의 책장에 포진했고,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남편의 친구들이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날고 기는 대학을 나와 이런 저런 대기업에 다니는 그것들은, 그 책들의 목록이 나의 것이 아닌 남편의 것으로 오해했고 당황해 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충무공이 내 책장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책을 뽑아 읽는 것이 그 섹션이긴 하다.) 남편은 평소 정치색이 매우 희박하다. 굳이 따지면 "쏘세지보단 햄이 낫다. 둘다 난 안 먹지만." 수준이랄까.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어가고부터 다들 주거지 고민을 시작했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이사의 시기라든가, 이사할 지역이라든가, 사교육의 문제라든가 아이들이 다니는 영어 어학원 이야기, 수학은 과외가 나을까 학원이 나을까. 결국 결론은 강남으로 이어졌다. 다들 조심스럽게 강남 진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고, 그건 충무공과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친구가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좌파가 왜 강남을 가려 하느냐고. 


아니. 좌파는 강남을 가면 안되나? 왜 좌파는 가난해야 하는데? 라는 질문이 읽고 덮어두었던 이 책을 다시 펼쳐들게 만들었던 시작점이었다. 


좌파가 되기 위해서 가난해져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좌파질을 지속할 자신이 없다. 나는 내 스스로가 좌파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노무현을 좋아하고 유시민을 좋아하고 문재인을 지지하고 박원순과 안희정을 지지하는 것이 곧 좌파라면, 그래. 나는 좌파가 맞다 치자. 그렇다고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내가 강남을 가서는 안되고, 내 아이들의 사교육을 해서는 안되고, 아이들이 좋은 학벌을 가지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야 한다면 나의 좌파질은 지속될 수가 없다. 나는 좌파이기 이전에 뼛속까지 속물이니까. 


말을 뒤집어보자. 내가 노무현과 문재인과 유시민 등등으로 대변되는 그 집단을 지지 하지 않는다해도 적어도 나는 박근혜나 이명박이 속해있는 그 집단을 지지하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대학나온 배운 녀자" 로서의 나의 자존심 문제다. 남편의 친구가 자신은 박정희와 박근혜를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말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아니 대학 나온 사람이 왜 그래요?' 였고, 그 말은 그대로 그 사람을 자극했다. 10년이 넘는 친분관계 안에서 처음으로 피튀기는 정치 설전이 오고갔고, 나는 어영부영 "아 몰라몰라 난 노빠 유빠 문빠아아아아아 할 테니 그대는 박근혜 인정하시구랴. 끝." 하고 논쟁을 끝내버렸다. 화장실에서 뒤 안닦고 나온 기분이긴 했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그와 나는 평소, "흥남부두 남매" 라며 서로를 지칭하고 놀았던 사이였으니(전생에 남매였다가 6.25때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사이라고~ 남편과 그의 아내는 우릴 흥남부두 남매 또는 국제시장 남매라고 놀렸다. 게을러 터지고 이기적인-_-;;; 면이 남매라고 하지 않을수 없을만큼 꼭 닮았다고. 욕도 혼자 먹는 거 보다는 둘이 먹는게 좀 낫더라.) 이런 논쟁으로 사이가 싸해 지느니 내가 아무 생각없는 아줌마 빠순이 되는 편을 택한거였다. 


하여튼. 울 나라에서 젤로 좋다는 대학을 나온 그 사람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업적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으면서 그들을 욕하는 너 그럼 북한으로 가야지" 라니. 아니. 님하. 아니. 님하. 너 그 대학 나와서 그딴 말을 하면 안되지, 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오빠가 흥남부두 시절엔 안 그랬는데 환생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입매.......


똥누고 뒤 안닦은 기분으로 그 논쟁에서 도망쳐 온 나는 책을 펼쳐들며 씩씩거렸다. 그래 나는 강남 좌파다 어쩔테냐. 강남 살면 좌파하면 안 되냐. 강남 가고 싶어하면서 좌파하면 안 되냐. 내가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좌파 코스프레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낫지 않나.


이것이 나의 변명이다. 지속 가능한 좌파질을 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속물성과 타협한다. 그게 나쁜가?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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