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와 생존자 『잘 자요, 엄마』,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by 서미애
읽은 날 : 『잘 자요, 엄마』 2026.3.7.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2026.3.8.
바로 며칠 전 뉴스에 세칭 ‘모텔연쇄살인사건’의 범인 20대 김모 여인이 사이코패스 진단 평가(PCL-R) 결과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는 친절하게도 사이코 패스 진단 검사의 만점이 40점 이라는 것부터, 25점 이상이면 통상적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것이고 유영철의 점수가 38점, 정유정이 28점, 강호순이 27점이라는 것까지 밝혀주었다. 언젠가부터 흉악 범죄가 벌어지고 그 범인이 검거되면 그들의 사이코패스 진단과 그 결과를 고지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 소설 『잘 자요, 엄마』에는 20여명의 여성을 살해한, 굳이 검사를 해 보지 않아도 사이코패스임이 분명한 연쇄살인범 이병도가 등장한다. 검거 후에도 밝혀진 범죄 외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굳이 풋내기 범죄심리학자 이선경을 지목해 면담을 원하고 선경은 학자적 탐구욕으로 이 상황에 엮여 들어간다.
소설은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 내가 아는 맥도널드는 미국의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야뇨증, 방화, 동물을 상대로 한 잔혹행위라는 세 가지 아동기 특징으로 어떤 사람이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정상인지 판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특징이죠?”
“연쇄살인범들의 어릴 때 특징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이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죠? 네, 특수 상황을 일반화시킬 때 생기는 오류죠. 그것들이 연쇄살인범의 어릴 때 특징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의 경우, 즉 그런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연쇄살인범은 아니죠. 아니, 오히려 그 수는 극히 미미하다고 봐야죠.”
……
“어릴 때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이 된 거죠?”
서미애, 『잘 자요, 엄마』, 엘릭시르, 2010, p.42-45 발췌
풋내기 초보이기는 하지만 범죄심리학자인 선경은 “연쇄살인범들은 수많은 퍼즐 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여러 가지 요인이 모여서 완성되는 존재”(p.47)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그 ‘여러 가지 요인’을 모아주는 것이 어린시절의 ‘가정 내 학대’라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 있고 그 말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가해자의 서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이 된 거죠?’라는 말에 답을 할 수도 없다.
인류는 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생존했고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왜?’라는 질문을 통한 원인과 결과 찾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원인’의 소거를 통해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개별 범죄자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지언정 그 왜?라는 질문을 멈출수는 없다. 인간이란 원인과 결과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인류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기에.
이병도는 지독한 가정폭력 속에 성장하다 11-2살 무렵 그 폭력에서 도망친다. 도망의 끝에 다다른 곳에 과수원집 네 모녀가 있었고, 그곳에서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평화와 안정을 맛본다.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아동폭력의 희생자였지만 아직은 그 무엇도 하기 전에 도망을 쳤고, 도망친 곳에서 만난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따뜻한 사람들이었기에.
선경의 의붓딸 하영은 선경의 남편 재성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결혼한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가, 어느날 남편이 12살이 다 되어가는 이 아이를 두 사람만의 안온한 가정으로 데리고 온다. 하영은 10살에 엄마를, 11살에 자신을 돌봐주던 외조부모를 동시에 잃은 불쌍한 아이다. 15살 무렵에 엄마를 병으로 잃었던 선경으로서는 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병도와의 기싸움과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보이는 의붓딸 하영과의 기싸움에 선경은 점점 지쳐가고, 이병도도 하영도 선경에게 매달려 구원을 찾는다. 그 와중에 남편 재성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이 굴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학문적 지식은 있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선경은 점점 지쳐간다. 이병도의 선경에 대한 집착이 병적으로 진행될 무렵, 선경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병도와의 접점을 끊어내려 하고, 하영에 대한 어른이자 부모로서의 연민과 책임감, 인간으로서의 거부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이병도와 하영은 자신들의 구원자로 생각했던 선경에 대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작가의 서술은 스피디하고 박력있다.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책이다. 작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선경의 행동이나 사고가 거부감을 느끼게 할 것임을 알지만 적당히 뭉뚱거리는 성녀적인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 선경의 답답할 정도의 머뭇거림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선경에게 독약을 먹이고 이불을 덮어주며 ‘잘 자요, 엄마’ 라고 말하는 하영의 말은 기묘하게 슬프다. 소설 전체에서 처음으로 선경을 ‘엄마’ 라고 부르는 순간이 선경을 독살하는 순간이라니. 그 순간 하영이 죽인 것은 ‘선경’이라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구원자의 존재이기도 하다. 구원의 가능성을 잘라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작가는 연쇄살인범이 되는 ‘여러 가지 요인’을 한데 모으는 것이 본인의 ‘선택’임을 입증한다. 희망에의 포기.
작가는 『잘 자요, 엄마』를 통해 어린 사이코패스의 완성을 보여준 지 10여년이 지나 16살의 하영을 데리고 다시 왔다. 선경은 죽지 않았고, 하영은 3년여의 아동 상담을 받으며 선경의 곁에서 성장했다. 그 4-5년 간, 선경과 하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서로에게 침범하지 않으며 한 집에서 살아간다.
선경은 아동심리 전문가인 친구 최희주에게 하영의 심리상담을 맡기고, 하영은 “어쩌면 최 선생을 통해 아줌마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서미애,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엘릭시르, 2021, p.69)에 그 상담에 응했지만 “삼 년간의 상담은 결국 아줌마와 다시는 예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소설 초반부, 선경의 친구이자 하영을 상담하는 아동심리전문가 최희주의 말은 너무나 정답이어서 상대적인 반감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독자도, 주인공 선경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마, 라는 반발을 일으키는 말이랄까.
“바보야,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 몰라서 그래?”
“어?”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하는 거잖아. 하영인 애정을 원하는 거야. 정에 목말라하는 거라고.”
……
“삼 년 동안 너희 모녀 상담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하영인 끊임없이 너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고 너는 햇볕 한 줌 안 주는 차가운 태양 같았어.”
서미애,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엘릭시르, 2021, p.91-92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작중인물만이 아니다. 독자 역시 작가의 유도에 따른 것이든 오독의 결과이든 편견을 쉽게 가지는 존재다. 그것이 시리즈물의 등장인물일 경우 더하다. 이전 시리즈에서 구축 된 작중인물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작중인물인 최희주에게 주어진 하영에 대한 정보보다 독자에게 주어진 하영에 대한 정보가 훨씬 많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최희주의 저 교과서적인 말들이 하찮음을 넘어 주인공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너의 진심은 알지만 너는 모르는 일들이 있어. 랄까.
전 편 『잘 자요, 엄마』가 사이코패스 이병도의 서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후편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는 사이코패스 하영의 서사를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성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대한 답이 나온다.
재미있는 교차다. 이병도는 11살에 ‘도망’쳤고, 하영은 11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능동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과수원집이라는 안온한 피난처에서 이병도는 16살에 스스로 떠나 그 지옥으로 돌아갔고, 하영은 16살에 과거의 지독한 기억이 있는 곳으로 본의와 상관없이 끌려들어간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것일까요,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만들어진다면 왜 만들어지는 걸까요.
연쇄살인마와 외과의사가 ‘냉정함과 대담함’의 측면에서 동일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흔히 알려진 말이다. 같은 특질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끝도 없이 파괴하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끝도 없이 살리는 외과의사가 된다. 그 둘을 가르는 선은 무엇일까.
17살이 될 무렵의 이병도와 하영에게는 동일한 살인충동이 찾아온다. 물론 그 강도와 상황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그 순간에 각자의 선택이 그 ‘왜?’라는 질문의 답이 된다. 왜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이 누군가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누군가는 아니게 될까요. 라는.
새로운 작가를 소개받는다는 건 매번 망설여지는 일이다. ‘소개받는’ 이라는 피동의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작품을 읽는 것은 나의 능동적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때로 그 피동을 가장한 능동의 행위가 흡족한 결과를 가져 올 때, 나의 독서쾌감은 더 커진다.
작가는 이 ‘하영 연대기’를 3부작으로 계획했다고 한다. 2편이 나왔으니 이제 한편 더 남았다.
하영의 선택이 지켜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주문해 둔 다음편을 기다리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신작을 기다릴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건, 삶의 즐거움이 또 하나 늘었다는 소리다.
기쁘다.
2026.3.8.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