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산고의 시간을 보내고 만난, 하얀 천에 싸인 아기는 낯설다. 40주 동안이나 내 몸에 있던 생명인데도 막상 눈 앞에 나타난 모습은 낯설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처음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웃지못할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처음 모유를 어떻게 먹여야 할지, 아기가 울면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장난감은 뭘 사줘야 하는지..... 모든 것이 새롭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이 때 대부분은 시어머니나 친정엄마의 경험담- 즉 ‘카더라 통신’에 의지하게 된다. 혹은 친구들이나 인터넷 카페의 또래 엄마들과 비교하며 키우게 된다. 내 아기를 제대로 알고 키우기 보다는 그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를 따라가기에 바쁘고, 첨단 육아유행에 따라가기 바쁘다.
-카더라가 아닌 과학
<아기성장보고서>는 부모나 주변사람들에게 의지하여 파악하게 되는 아기에 대한 궁금증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신생아에서부터 유아시기까지 아기가 어떤 능력과 장치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발달되어 가는지, 각 시기마다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여러 이론과 실험을 통한 사례로 풀어나간다. 신생아가 지닌 생존본능적 능력, 그렇게 최소한의 본능만을 가진 것 같은 아기가 어떻게-경험을 통해- ‘인간’으로 발전되어 가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모든 엄마들이 원하는 ‘똑똑한’ 아이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방법이 ‘접촉’이라는 것, 그리고 이 ‘접촉’이 지적 능력뿐 아니라 사회성과 정서까지도 좌우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나간다.
유전 vs 경험
보통 인간의 능력을 결정짓는 원인에 대한 의견은 두 가지다.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태어난 후의 경험을 통해 생성된 것인가. <아기성장보고서>는 ‘두 가지 다 중요하며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이 따라올 수 없는 놀라운 학습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억하며 구분하고 범주화시켜 나간다. 이러한 고등사고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 후의 경험들이 유의미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가 높은 학습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접촉과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바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균형잡힌 사람으로 자라기 어렵다. 그래서 경험은 타고난 능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아기성장보고서>는 유전과 경험의 상관관계에 대해 풀어나가면서 부모가 아기의 능력을 존중하면서 제대로 된 좋은 경험을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2%... 상상하지 못할 신비
<아기성장보고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생아의 능력, 두뇌의 구성과 발달과정, 그리고 애착이 정서와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 아기마다 다른 기질을 설명해나가면서 많은 지식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여기서 밝혀낸 그 이상의 놀라운 것들이 아기와 아기의 성장과정에 숨어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이 책에 기록되어있는 사실들도 놀랍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명에 대한 신비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태어나 당연하게 어른이 되고 또 부모가 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신비로 가득차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매우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 책을 덮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지식과 이성을 뛰어넘는 생명에 대한 경외를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한 생명으로서의 나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나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새삼스런 감사를 갖게 된다. 그래서 모든 부모에게, 또 부모가 될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