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로메로는 엘살바도르의 대주교로,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해 군사정권에 항거하다가 암살된 분입니다. 최근 같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성인으로 추대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다시 이 분의 이름이 언론 등에서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이 분의 생애와 암살에 대해서는 라울 줄리아가 주연한 영화 <로메로>나 엘살바도르 군사독재 정권의 참상을 다룬 영화 <살바도르>를 통해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리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분의 생애를 다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분이 맨 처음부터 군사정권에 투쟁하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자신도 어린시절을 가난하게 보냈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들과 같이 태어났으며 그들과 더불어 갈 것입니다."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에는 지배계층이 주도하는 일상화된 폭력에 억압받고 있던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해방과 참여를 위해 노력하는 메데인 주교회의 등에는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다가 결국 반대편에 서게 되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토록 소심하고 보수적인 그였지만, 전체 인구의 대다수를 위한 공익 추구와 관련된 정치현안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지며 엘살바도르 농민 그리스도 연합 등에 참여하였던 그의 친구 루틸리오 그란데가 군사정권에 의해 살해되면서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그의 변화에 대해 그는 "맞습니다. 저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이후로 로메로의 설교는 점차 강력해지고, 정의를 위한 교회의 사회, 정치 참여를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의 강론 중 인상적인 것을 뽑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회 구석구석에 퍼진 극심한 가난은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질문하시며 도전하십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가난에 찌든 아이들의 얼굴에서, 사회에 속할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젊은 청년들의 얼굴에서, 인디오와 흑인의 얼굴에서, 땅을 빼앗긴 농민의 얼굴에서, 조직도 없고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실업자들의 얼굴에서, 하찮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노인들의 얼굴에서 나는 예수의 모습을 봅니다.
-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불평등한 현실에 항의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종교에 관계없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교회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교회는 조화로움 속에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힘쓰는 모든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혼자만 순수하고 악에 물들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하는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창녀들과 세리, 죄인들과 대화하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길을 밝히는 하느님 백성은 열망, 기대, 이상을 스스로 찾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그들은 시대의 표징에 따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식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원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 말씀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시대의 요구를 알기 위해 역사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분을 찾고, 그 분의 뜻을 올바로 식별해야합니다.
이러한 강한 사회적, 정치적 참여 메세지와 함께 로메로 대주교는 니카라과 혁명에 대해서는 축하하고, 미국 정부의 엘살바도르 내정 간섭에 항의하면서 결국 암살당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회개 후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의 모습에서 성경 속의 사도들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고, 예정된 것과 다름없는 순교를 복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보고 기쁘게 받아들인 로메로 대주교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려준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