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lier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금희 작가의 신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창경궁의 대온실을 수리하는 공사를 맡은 건축사무소에서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면서, 고향을 떠나 어린 나이에 혼자 창경궁 근처의 집에서 하숙을 하며 지내는 동안 받았던 상처를 극복하고, 또한 자신이 하숙한 집의 주인 할머니가 홀로 숨겨왔던 상처를 알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매우 흔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김금희 작가가 과거에 일했던 경험을 살려 쓴 이야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너무 한낮의 연애’나 ‘경애의 마음’처럼 상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다룬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다루는 상처는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크고, 주인공이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장면에서는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함께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고향을 떠나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하숙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자체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 친구도 사귀게 되고 다소 까칠한 성격의 하숙집 소녀와도 조금은 가까워지면서 어쩌면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욕심 많고 남에게 상처를 잘 주는 다른 여학생에 의해 사랑을 비롯해서 서울에서 살면서 얻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을 돌아 갈 수밖에 없었던 작중 화자가 과거의 상처가 다시 살아날까 보고서 쓰는 일을 맡는 것을 꺼려하지만, 결국 일을 하게 되면서 나름의 책임감으로 대온실 아래 숨겨져 있던 배양실의 존재와 그 속에 숨겨진 사연을 추적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중 화자가 상처를 받게 되는 과거의 사연이,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학교 내에서 발생한 성적 처리 관련 부정에 연루되었다고 의심을 받게 되는 엄청난 사건이라 무척 안타까왔고, 가족과 떠나 어린 나이에 홀로 타향에서 하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고민, 고민하다 상대방에게 사과하려 할 때, 이에 대한 아무런 관심과 생각도 없이 행동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서 더한 상처를 받게 되는 모습도 안타까왔고,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좋아하던 남학생과도 헤어지게 되면서 (자신의 속마음과는 별개로 주위의 눈치 때문에 남학생을 피하게 되어 외부 상황만이 아니라 자신의 용기 없음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픈 상황이고), 평소 서로 자신들이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단무지를 먹는 장면이 연출하면서 행동으로 결별을 선언하는 장면이 무척 가슴이 아팠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야기가 후반에 달하면서 밝혀진 하숙집 할머니의 숨겨진 사연도 충격적이었고, 할머니가 그 상처로 인해 평생 마음을 닫고 주위와 담을 쌓고 살지 않았으면 그녀가 사랑했던 존재들과 다시 만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 마지막에서 작중 화자에게 상처를 준 존재들이 자신들이 가진 욕심과 날카로움으로 스스로 상처를 받고 죽거나 약해진 모습을 접하면서 위안(?)을 받고 회복될 가능성을 보게 되고, 우연히 과거의 옛사랑을 만나면서 옛 사랑을 회복할 가능성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비교적 훈훈하게 끝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공문성애자라 불리는 공무원 장과장의 존재가 흥미로왔는데, 여러 가지 사연으로 그 동안 받은 상처가 쌓여 매사에 상처를 받을 경로를 차단하는 습관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깊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의 행동거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의미에서 생각해볼 거리를 전해준다는 느낌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