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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이 가장 좋아하는 유물은 부여박물관의 한 토기였다. 화려해서도 아니고 희귀해서도 아니고 명은과 개인적인 연관이 있어저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박물관이든 제일 첫 관에 배치하는 단순한 형태의 토기였는데, 가마의 불 속에서 엉거주춤 내려앉은형태였다. 못 쓸 정도로 망가진 것은 아니고 윗부분이 모호하게 일그러진 형태였는데 아마 토기 장인은 에이, 만든 김에 그냥 쓰지, 뭐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그 실패작이 천오백 년을 살아남아 박물관에 자리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훨씬 잘 만든 토기가 많았을 텐데 하필 그 토기가 발굴되고 보존되어서 유리함 안에 전시된 걸 4세기의 토기 장인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황당해하고 민망해할까? 천오백 년짜리 유머였다. 알아채고 웃는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시간의 시시한 웃음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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